#007 푸릇한 생활
✣ 박연습의 단련일기
목욕을 하고 남은 물에 어제 내가 입고 벗은 것들을 빨았다. 운동복과 속옷 그리고 양말. 어제 사용한 손수건도 같이 빨았다. 며칠 전에 안 쓰는 수건을 작게 잘라서 집안에서 쓸 손수건을 만들었다. 책상에서 이것저것 집어 먹고 자주 흘리는데, 물티슈 대신 사용하려고 만든 것이다.
목욕하는 김에 간단한 빨래를 하면 시간이 거의 안 든다. 몇 개 안 되니까 다용도실에 간단히 말릴 수 있고 내일 바로 사용할 수 있다. 세탁기에 운동복을 빨 때는 운동복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모았다가 세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그날 손으로 빨면 운동복이 모자라지 않았다. 새 운동복이 갖고 싶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평소에는 빨래야 어차피 세탁기랑 건조기가 다 해주니까 빨랫감이 쌓이면 빨래를 할 여유가 있건 없건 일단 세탁기를 돌렸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일하다가 건조가 끝나면 갑자기 산더미처럼 생긴 세탁물이 부담스러워 개는 것을 미루다가 먼지가 묻거나 구겨진 채로 방치할 때가 많았다. 그에 비해 그날그날 손으로 하는 빨래는 내가 할 수 있는 때에,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서 그런지 미뤄둔 숙제 같지 않고 개운하다.
목욕을 하고 한 손 분량의 빨래를 널고, 참외를 깨끗이 씻어 껍질째 얇게 썰어 먹었다. 단단하고 두꺼운 참외 껍질도 얇게 썰어서 먹으면 단단한 껍질의 식감이 오히려 매력이 된다. 아삭아삭, 질겅질겅 씹는 맛이 있고 뒤처리도 간편하다. 문득 지난번에 산 참외는 너무 커서 먹기 힘들었던 게 생각났다. 유난히 크고 실한 참외가 있어서 돈을 더 주고 사 왔는데, 한 손에 들어오지 않아서 깎기도 힘들고 단맛도 덜 했다. 맛이 없는데 크니까 먹을 때도 난감했다. 너무 큰 참외는 사지 말자는 교훈을 얻고 이번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참외를 샀다. 그렇지, 그렇지.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지난번에 무를 살 때도 그랬다. 욕심을 내서 가장 두꺼운 무를 집어왔다. 결과는? 내 허벅지만 한 무를 썰면서 후회했다.
너무 큰 참외도, 너무 두꺼운 무도 사지 말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려운 일도 잘게 쪼개면 감당할만한 것이 되고, 같은 식자재도 채를 썰 때 다르고 깍둑썰기를 할 때 다른 것처럼, 생활도 그렇지 않을까. 자신에게 맞는 크기로 사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최근 이나가키 에미코의 책을 몇 권 읽었다. 이나가키 에미코는 한국에 퇴사 붐이 일었을 때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으로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다.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에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때도 프리랜서였고 퇴사는 내 관심 분야가 아니어서 금방 잊어버렸다. 최근에서야 그녀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물질과 소유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찾아보았다. 그녀는 회사도 졸업해버리고, 청소기도 버리고, 전자레인지도 버리고, 냉장고도 버리고 혈혈단신 작고 쓸쓸한 나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그게 자신의 본 모습이었다고 말한다. 오랜 준비 끝에 자신의 크기를 찾은 그녀는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 가전제품이 인간의 가능성을 늘리고 생활의 크기를 키웠지만, 인간이 그만큼 행복해졌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냉장고가 생기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많은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쩐지 버려지는 음식은 늘어만간다. 냉장고가 채워주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끝을 모르는 욕망이라는 사실을 반영하듯 가전은 계속 몸집을 불려가고, 확대된 생활에 익숙해진 우리는 기계에 의존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불편하다고 느낀다.
이나가키 에미코는 '진정한 자유란 없이도 살 수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날그날 하는 손빨래처럼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크기로 사는 것이 조금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고 얇게 썬 참외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나에게 맞는 생활의 크기를 가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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