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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련일기 Aug 29. 2021

잠시 멈춤

#012 여름방학

✣ 박연습의 단련일기

멈추기 스승 우리 집 고양이


친구가 연금복권에 당첨되는 꿈을 꿨다. 꿈에서 친구와 같이 택시를 타고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었는데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근데 나 매월 200만 원씩 받는 연금복권에 당첨됐어.”라고 말했다. “어떻게 당첨됐어?”라고 물으니 “만 원치 샀는데 당첨됐어, 이따가 찾으러 가야지.”라는 대화를 하다가 꿈에서 깼다.


꿈에서 깬 월요일 아침, 연금 복권을 사러 가야 하나 고민했다. 복권을 사 본 적도, 당첨되기를 간절히 바란 적도 없는데 왜 이런 꿈을 꾼 것인지 모르겠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연금복권 수령액은 세금을 제하고 나면 대략 5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20년 동안 매달 500만 원을 받는다니 참 좋겠다. 그렇게 되면 나는 뭘 하지? 처음에는 신이 나서 돈을 흥청망청 쓸지도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연금복권에서 나오는 돈은 저축하고 지금과 비슷하게 살 것 같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적성에 맞고 보람도 느낀다. 하지만 역시 일이기 때문에 너무 많이 하고 싶지는 않다. 근데 언제 또 일이 들어올지 모르니까 무리가 될 걸 알면서도 무리하는 게 일상이다. 여유가 생긴다면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할 수도 있을까?  하기 싫은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을까? 먹고 사는 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면 서울보다 한적한 곳에 가서 살 수 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문득 하려고만 하면 지금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가능한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 이렇게 하는데 20년간 매달 500만 원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용기를 내거나 욕심을 버리면 되는 일인데, 불안해서 무엇 하나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지 상황이 아닌데. 불안한 마음에 이걸 했다가 저걸 했다가 하면서 무료한 시간을 중독으로, 여백을 소음으로 채우고 있는 거 아닐까. 


다니고 있는 요가원에서 문자가 왔다.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격상 기간 동안 수업 연기가 가능하다는 문자였다. 요가는 올해 3월부터 시작했는데, 다른 일정이 있는 날 말고는 4~5개월 동안 거의 빠지지 않고 요가원에 갔다. 매일 저녁에 일정이 있으니 체력적으로 지치기도 했는데 멈추기가 힘들었다. 요가원에 가지 않으면 신경이 쓰였다. 예전에는 운동을 등록하고 가는 날보다 안 가는 날이 더 많았는데. 이상하네, 이거 어떻게 멈추는 거더라? 요가에 재미가 붙으면서 안 되던 동작이 되고 몸이 달라지니까 욕심이 생겼다. 선생님께 드라마틱하게 변했다는 칭찬도 받고(내가 운동으로 칭찬을 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몸이 불편해서 운동을 시작한 거였는데 그냥 요가를 좀 더 잘하고 싶어졌다. 언제까지고 지금처럼 매일 요가를 할 수도 없을 텐데, 하루 이틀 쉬는 게 조바심이 났다. 


요가만 그런 게 아니라 처음엔 좋아서 시작한 많은 일이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욕심이 생기고 내가 만든 규칙에 나를 가두게 된다. 스스로 만든 상황에 갑갑함을 느껴 그런 꿈을 꾸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복권 꿈을 꾼 날, 복권은 사지 않고 요가를 잠시 쉬기로 했다. 멈출 수 있는 건 멈춰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휴가 기간이기도 해서 저녁  시간의 여유를 즐겨보자고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훌쩍 흘렀다. 쌓인 서류뭉치를 정리하고,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집안일을 했다. 어영부영 3주가 지나고 얼마 전부터 다시 요가원에 나가기 시작했다. (4주까지 쉴 수 있었는데, 역시 조바심이 났던 걸까) 조금씩 펴지고 있던 어깨가 다시 굽은 것은 애석하지만,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요가는 재미있고,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멈췄다가 다시 시작했을 때 걱정했던 것만큼 최악은 아니었다. 차근차근 다시 하면 되고, 멈췄다가 다시 시작해도 되는 거였는데 나는 뭘 걱정한 걸까.  


운동을 쉬다가 다시 하면 더 잘 되기도 한다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잘 되던 것도 안 돼서 낑낑거리다 보니 처음 요가를 시작했던 때가 생각났다. 어차피 나는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 상황이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영역에 대해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곁눈질할 틈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에게 집중하면서 혼자만 알 수 있는 작은 변화에 만족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 다른 사람을 보고 있었다. 요가를 하면서 나 자신을 바라본 게 언제였더라. 다시 나를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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