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여름방학
✣ 황집중의 단련일기
한여름이 오면 몸도 마음도 기운을 잃는다. 땡볕에 시든 상춧잎 같다. 해는 일찍 떠도 눈은 떠지지 않고 무더위가 강해질수록 기상 시간이 늦어지는 건 왜일까. 정신 차려. 지난 7월엔 폭염으로 무슨 정신으로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설상가상으로 아침 7시만 되면 바로 옆에서 건물을 짓는 공사 소리가 들려온다. 탕탕탕. 부딪히는 쇳소리가 신경을 긁는다. 공사 소음을 피해 얼른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와도 마음 편히 있을 곳이 없다. 카페에 가도 음료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눈치를 보며 마스크를 열었다 닫았다 누군가에게 계속 감시당하는 기분이다. 코시국 두 번째로 맞는 여름이지만 두 번째라서 더 끔찍하다. 더운 숨을 마스크 속에 머금고 있으면 나는 지금 지옥에 있는 건가 정신이 아득하기만 하다.
‘이 상황에 끝이 있을까.’
어제는 새벽에 일어나서 밭으로 갔다. 밭은 의정부에 있어서 편도로만 2시간이나 걸린다. 요즘은 9시만 되어도 볕이 뜨거워서 밭에 있기 힘드니 그 전에 도착해서 일을 마쳐야 한다. 첫차를 검색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니 밖은 여전히 캄캄하고 풀벌레 소리 요란했다. 방 안의 불을 켜며 어둠 속 존재들에 빛을 드리운 거 같아 잠시 미안했다. 새벽에 깨어 있으니 어디 멀리 여행을 떠나는 사람 같다. 아, 사실 멀리 가는 거 맞지. 나는 밭에다 음식물 찌꺼기를 퇴비로 준다. 냉동실에 얼러둔 큰 봉지를 꺼냈다. 노트북과 작업 도구가 들어 있던 가방에 호미와 낫을 넣고 돌덩이같이 딱딱한 음식물도 잘 봉해서 짐을 챙겼다. 흠. 백팩 속에 이런 게 들어있는지 아무도 모르겠지. 묵직한 가방을 들고 첫차 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섰다. 날이 환해지고 밭이 가까워지자 마스크를 슬며시 벗어본다. 인적이 없는 곳이다. 대신 물기가 가득한 초록의 향이 가득하다. 건강한 흙냄새도. 바깥 공기는 이러했구나. 얼굴 근육이 일순간 펴진다.
‘정말 여행 온 기분인데!’
맑을 땀을 뚝뚝 흘리며 잡초를 제거한다. 일을 하지만 흙을 만질 때마다 에너지는 충전된다. 몸을 움직이는 동안 풀 밑에 숨어있는 많은 존재가 나로 인해 분주히 도망간다. 미안 미안. 다리 개수도 사람보다 많고 눈코입도 너무 다르게 생겼다. 방에서 너희들을 봤으면 한차례 비명을 지른 뒤 휴지에 말아 쓰레기통으로 보냈을 텐데, 이곳에서는 너희들과 나는 서로 돕는 존재구나. 다양한 존재들이 공존하는 곳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작년 연말 플라스틱 챌린지에 도전하며 도저히 이렇게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텃밭 농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언젠가 해야지 생각은 했었으나 실천으로 옮기는 때는 종종 직관적으로 정해진다. 플라스틱으로부터 벗어나 정말 자유로워지고 싶은 나의 최종 목적지는 소비의 사회에서 벗어난 자급하는 생활이다. 내가 올해 배우는 건 관행적인 농사법과 다르게 ‘퍼머컬처*'라는 새로운 방식의 생활방식이다. 농약도 화학 비료도 줄 필요가 없고 생태를 이해하고 활용하여 노동력도 최소화된다. 자연 생태계를 돌보는 정원사가 된 느낌이다. 나의 먹거리를 얻기 위해 자연과 싸울 필요가 없다는 점에 매료되었다. 밭에 있는 오늘은 ‘플라스틱 없는 7월' 챌린지가 끝나는 날이기도 하다. 때때로 이런저런 챌린지에 참여해야 플라스틱 사용을 그나마 줄일 수 있다. 마지막 인증 사진으로 텃밭의 수확물을 찍었다. 호랑이 강낭콩 콩깍지를 열어 익은 순서대로 줄 세워보았다. 정말 호랑이 같은 무늬가 있네. 저마다 색이 다르고 무늬도 다른 콩알들을 보며 아름다움을 즐겼다. 가만가만 들여다보니 더위를 잠시 잊는다.
‘나는 아무래도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할 거 같아.’
밭이 생기면 콩을 제일 먼저 키울 거다.
* ‘퍼머컬처(Permaculture) 란? 지속가능한(Permanent) 농업(Agriculture)에바탕을둔 ‘생태문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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