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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련일기 Aug 29. 2021

심심 포레스트 - 돌보는 하루

#012 여름방학

✣ 정수련의 단련일기

어느 날 아침 앙꼬와 (집 앞) 모닝 데이트

아침에 눈을 뜨면 고양이 앙꼬에게 인사를 한다. 앙꼬는 내가 자고 있는 방 창문에서 자고 있을 때도 있고, 거실 아무 곳에나 누워서 자고 있기도 하다. 일어나서 아는 척을 하면 앙꼬도 기분 좋은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밤새 쌓인 답답한 공기를 환기 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어둔 후,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가본다. 무더위가 시작된 이후, 아침저녁으로 물을 줘도 커다란 수세미 잎들은 아침부터 축축 늘어져있다. 해가 뜨거워지기 전 화분에 물을 주고, 길고양이 밥은 얼마나 줄었는지 확인한다. 깨끗이 비어 있는 밥그릇을 보면 마음이 좋아지지만, 먹은 흔적이 얼마 없고 한참 남아있는 사료를 보면 걱정이 된다. 사료가 남아있는 밥그릇을 그대로 두면 비둘기들이 낮 동안 습격하기 때문에 밥그릇을 안으로 들여놓아야 한다. 


주변 친구들의 안녕을 확인한 후에는 요가 매트를 펴고 짧은 운동을 시작한다. [단련일기] 친구들과 2월 초 시작한 아침 요가 수련은 시작 시간이 7시 30분으로 다소 미뤄졌지만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게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요가를 하고 난 다음에도 시간이 살짝 남으면 요거트에 과일과 오트밀을 넣어 아침 식사를 한다. 8시 30분이 되면 컴퓨터를 켜고 회사 단톡방에 출근을 알린다.




1년 반이 넘게 지속된 재택근무로 나의 일상은 작업실 공간을 돌보는 일에 비중이 좀 더 늘었다. 심심작업실 1층은 6명의 친구들이 작업 공간으로 셰어하고 있고, 2층은 앙꼬와 내가 지내면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에어비앤비 손님도 2층 남는 방에 방문한다. (코로나 이후 해외여행이 줄어들면서 여행으로 종종 한국을 방문하는 손님보다는 일이나 학업으로 인해 장기로 묵는 손님들이 많아지긴 했다.) 공간을 돌보는 데 꽤나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는 것을 이 오래된 작은 주택에서 지내면서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바깥 수도가 터져버린다거나, 난데없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진다거나, 화장실 문이 잘 안 닫히거나 하면 수리기사를 불러 그때그때 고쳐야 했다. 센서등을 달거나 실리콘으로 싱크대의 빈틈을 메우는 일처럼 간단한 수리는 직접 하고 싶어서 작년에는 여기공의 여성 수리수업도 들었다.


손이 많이 가고 에너지도 많이 써야 하는 공간임에도 이곳을 애정하는 이유는 공간에 함께하는 사람과 동물, 식물 때문일 거다. 1층이 작업실이다 보니 작업실을 이용하는 친구들과 식사를 함께하기도 하고, 주말에는 비누 만들기를 하거나 매실청(을 빙자한 매실주)를 담그기도 한다. 다들 손재주가 많은 친구들이라 서로가 가진 재능을 공유하며 원데이 클래스를 자주 열었다.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심심 원데이 클래스는 잠정 휴강 중인 상태다.) 작업실 친구가 데려오는 강아지 ‘먹물’이가 최근에 합류하면서 작업실은 보다 완벽한 생태계 - 심심 포레스트가 되었다. 하루 종일 2층에서 앙꼬와 재택근무를 하다가, 퇴근을 하고 나서 1층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먹물이를 데리고 동네를 산책하며 여름 하늘을 바라보던 어떤 날은,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집 앞 공터에서 노는 동네 꼬마들도 이 집에 자유롭게 드나드는 고양이와 강아지를 보며 신기해한다.


코로나 이후로 장기 숙박을 주로 하는 에어비앤비 손님들과는 친구가 되고 있다. 한국 대학원으로 교환학생을 와서 1년을 같이 지냈던 스위스 친구 미쉘과는 온라인 수업&재택 근무 동지였다. 코로나가 시작되어 외출이 어려워지자 집에서 각자의 스타일로 요리를 해서 밥을 함께 나눠 먹었고, 한강으로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유난히 정이 많던 영국 친구 로라는 작업실에 있는 모든 친구와 ‘베프’가 되더니 ‘심심 여자들’이라고 부르면서 자주 밥을 같이 먹었다. 작년에 집중, 연습과 함께 버추얼마라톤을 뛰고 돌아왔는데 로라가 비건 밥상을 차려놓아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3개월만 지내고 영국으로 돌아갔다가 올해 여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요즘은 제로웨이스트샵인 ‘알맹상점’ 메이트로 자주 보고 있다. 방탄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비앤비손님으로 오는 외국 친구들은 대부분 한국어를 제법 잘 한다.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코로나 이야기도 하고, 대학 졸업 후의 상황도 이야기하고, 역사 이야기도 하며 세상 살이가 결국은 비슷하구나 새삼 느낀다.


작업실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친구들에게 나는 ‘언니'라고 불리고 있다. 작업실을 사용하는 친구들도, 비앤비 손님들도 (일단은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ㅎㅎ) 언니라고 부른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님'을 붙여서 얘기하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는 순간 언니라고 불러준다. 나는 이 호칭이 좋다. 이 작고 오래된 주택 집에서 우리가 함께 먹은 밥이 쌓이고, 함께 보며 낄낄거리는 영상이 쌓이고, 이것저것 만들어간 아이템들이 쌓인다. 이 공간을 언제까지 유지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언제인지 모를 그 때까지는 따뜻한 관계와 이야기를 잔뜩 쌓았으면 좋겠다. 심심포레스트에서 뒹굴뒹굴하는 매 순간이, 여름방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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