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속상한 이야기
이게 회사에서 일어난 일은 아닌데, 회사 회식 때 일어난 일이니까 회사 다니면서 일어난 이 매거진에 올려도 틀린 건 아니겠지.
진짜 엄청 어이없는 경우라서 그 상황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고, 이 상황을 겪고 있는 나의 문제점도 파악해보려 했고,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을 처음도 아니고 매번 겪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화가 나면서 해결하고 싶었다.
무슨 일이냐면.
이날 회식을 하고 술을 많이 먹진 않았지만(알콜 쓰레기) 너무너무 추워서 전철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려고 했다.
정확히는 우리 집까지 걸어가면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
버스 타면 30분 거리
택시 타면 5분 거리.
이런 상황이다 보니 평상시에는 잘하지 않는 행동. 택시 타기를 시전 했다.
그리고.
굉장히 당황스러운 일을 당했다.
택시 타면 5분 거리라는 뜻은 이 동네에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면 당연히 알 수밖에 없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우리 집 바로 옆은 굉장히 유명한 정부 건물이 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다.
그. 런. 데
택시 타자마자 이 아저씨.
"길 모르니까 알려줘요"
순간 나는 매우 자연스럽게 "아 네" 하면서 내가 네이버 지도를 켜서 알려주려고 하는 찰나. 아 또 이러네. 싶었다. 그렇다. 이 상황은 한두 번 겪은 상황이 아니다. 우선 가까운 건 둘째치고 우리 집은 구석에 좀 택시기사들이 가기 싫어하는 위치에 있다. 해서 거의 10명이면 8명이 한소리씩 꼭 한다. 안 가는 택시기사들도 태반이다.
그리고 이번 같은 경우는 불법으로 승차 거부는 못하겠으니 알아서 내리라는 느낌의 재수 없음이었다. 그런데 내가 자연스럽게 찾으려고 하니까 '출발은 했는데 짜증나니까 니가 알아서 길찾아라 나는 너한테 짜증을 내겠다는' 상황이었다.
순간 고민했다. 평상시처럼 이렇게 바보 같이 네 하면서 여기서 여기로 가주세요. 이렇게 말하다 보면 늦게 말해줬다고 지*하는 경우가 생기겠지. 안 되겠다 싶었다.
"네비 있잖아요 아저씨"
멀쩡하게 앞에 달려 있는 네비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 말이 더 당황스럽다.
"아가씨는 집도 몰라요?"
그 말을 듣고 여기서 싸워봤자 이 사람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고 그냥 내리는 게 마음 편하겠다 싶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일어난 대화와 아주 어이없는 상황이다.
"아저씨 길 모르시면 그냥 내려주세요."
"네? 아니 집도 몰라요?"
"네 아저씨는 택시기사가 길도 모르세요? 저도 몰라요. 그냥 내려주세요."
"내려요."
진짜 이 아저씨 6차선 도로에서 정확히 가운데 있던 자리에서 내려주더라. 완전 쌩 도로 6차선에서 3차선에 서 있었나. 그냥 문을 열고 나오니까 뒤에서 오는 차들이 빵빵 거리면서 난리를 치더라. 방법이 있나 그냥 걸어가야지.
그리고 나는 기가 막히게 택시 번호판을 봤다. 정말 고민했다. 이거 신고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신고하기에는 사진도 안 찍었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리고 이 아저씨도 진짜 우리 집 까지 가기 싫었나 보다 진짜 돈 없는 그지 택시 기사라서 먹고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기름값을 함부로 낭비하고 싶지 않았나 보지. 그래서 나 같이 자기보다 신체적으로 약한 여자들이 타면 태우기 싫을 때 그렇게 팍팍 티 내면서 강압적으로 말하나보다. 그냥 그래서 가난하게 사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불쌍해서 그냥 내버려둬야지. 나도 귀찮게 얽매이고 싶지 않다.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곱씹게 되더라. 내가 이번만이 아닌데, 살면서 한두 번 겪은 게 아닌데, 그리고 나만 당하는 게 아닐 텐데... 그래서 너무 억울해서 이렇게라도 기록해야지 싶어서 적어본다.
이런 일을 당하고 나는 그동안 어떻게 택시기사에게 당해왔나. 생각해봤다. 그리고 그 일화를 하나씩 떠올려봤다. 진짜 너무 많아서 하나씩 적기도 어려운 그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멘트 별로 묶을 수 있다는 것도 충격.
이런 일들을 하나 적었다고 한 번만 당한 것도 아니라는 것도 슬픔.
이게 당연한 줄 알고 지냈던 내 자신이 불쌍.
하. 한번 나열해보자.
1. 외모 지적 하기
그렇게 외모를 지적한다. "입이 크다", "눈이 크다", "외모에 신경 많이 쓰지 마라", "신경 써야겠다", "얼굴이 왜 이렇게 하얗냐", "요즘 여자들은 왜 그렇게 살을 빼는지 모르겠다", "살 빼야겠다", "치마가 너무 짧다" 등등 '어쩌라고' 싶은 외모 지적을 너무 많이 한다. 이 정도는 진짜 웃으면서 지나갈 수 있는 아주 약한 에피소드다.
2. 외모 성희롱 하기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 중 하나만 적어보겠다. 21살이었나 그때 택시를 탔다. 5분 정도 탔던 거리였다. 그리고 50대 정도로 보이는 멀쩡하게 생긴 걸로 기억되는 택시 아저씨가 갑자기 옛날 여자를 볼 때 5가지 조건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나보고 맞춰보랜다. 대답하기도 싫어서 그냥 "잘 모르겠다"라고 답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더니 지가 스스로 하나씩 말하더라. 그러고 나서 그 5가지 조건이 밤일을 잘하는 여자의 조건이라면서 "학생은 그 5가지가 다 속하네! 관상이 좋네!"라는 개소리를 하는 걸 멍하게 듣고만 있었다. 내가 지금 여기 달리는 택시 안에서 뛰어내려야 되나 이 아저씨가 날 제대로 데려다주는 게 맞을까 고민하면서.
3. 그냥 성희롱 발언하기
"요즘 여자들은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돌아다닌다", "혼자서 택시 타면 안돼요 아가씨", "나 같은 택시기사 만나서 다행인 줄 알아, 밤에는 택시 타면 안 돼" 등등. 진짜 개소리.
아니 그럼 지는 세상 무서운지 알아서 돌아다니나? 지는 왜 혼자서 택시 운전하고 있냐, 지같은 택시기사 만난 게 진짜 재수 옴 붙은 걸 왜 모르지, 밤에 택시 타지 그럼 내가 뭣하러 택시를 타냐 너 같은 택시기사 만날까 봐 무서워서 요즘에는 밤에도 택시 안 탄다 진짜.
4. 카드는 절대 안 받아주기 받더라도 무조건 짜증내기
진짜 나는 현금이 없으면 절대로 택시를 안 탔다. 그리고 모든 택시 기사들은 현금 아니면 안 받는 줄 알았다. 카드 내려고 하면 그렇게 뭐라고 하던 사람들 진짜 이건 100%다. 안 들은 적이 없다. 아 그래 90%다. 혹시 모를 그래도 착한 아니 평범한 택시 기사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진짜 거의 매번 들었던 거 같다 어렸을 때는.
진짜 카드는 절대 안 받고 어떤 아저씨는 집 앞까지 데려다줬으니까 집에 올라가서 현금 갖고 오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아빠한테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한 후 현금을 가져다달라고 했더니 갑자기 내 손에 들린 카드를 뺏어서 긁고 가버리더라 그냥 이번만 봐준다면서. 진짜 지금 생각해도 열받는다.
그래 뭐 이건 솔직히 최근에는 좀 많이 변한 건 맞는 거 같다. 하지만 아직도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는 카드 수수료도 아니니까 이유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 도대체 왜 뭐라고 하는 거야?
5. 길 모르는 척하기
이건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앞서 겪은 에피소드가 그 예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6. 돌아가기
한 번은 이랬다. 누가 봐도 너무 돌아가는 상황. 그래서 돌아가지 말고 가달라고 했더니 갑자기 적반하장으로 성질을 내면서 하는 말. "그렇게 가면 몇 분 안에 가요?" 돌아가지 않고 가면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돌아가면 20분은 충분히 넘으니까. 그래서 "10분이요"라고 대답을 했었다.
그랬더니 정말 미친 듯이 과속을 하면서 10분 안에 도착. "됐죠?" 이러면서 진짜 한 대 때릴 것 같이 말하던 이 택시기사를 잊을 수가 없다.
이 정도?
이런 상황을 내 평생 겪어오면서 나는 택시는 웬만하면 타지 않는다.
혹시라도 택시를 타게 되면 현금이 있는지 무조건 확인했으며, 택시기사가 살짝이라도 가기 싫은 티를 내면 타지 않았으며, 택시를 타면 무조건 전화를 했다.
성희롱 발언에 대꾸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대처였으며, 재수 옴 붙었다. 잊자 에휴.라고 그냥 넘길 정도로 흔한 일이었다. 진짜 현금 안 받는 건 엄청 당연한 일이었으며, 카드 내는 내가 나쁜 고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냥 내가 당하는 거 다 당하는 줄 알았다. 그냥 택시기사들이 돈도 못 벌고 그지같이 사니까 먹고 살기 빡빡해서 손님한테 친절하기 어려운가 보다. 그래서 현금은 절대 안 되는 가보다. 가기 힘든 곳은 당연히 안 가는 건가 보다. 가달라고 하는 내가 나쁜 고객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당연한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라. SNS가 발달되고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이거였다. 아니라는 거. 나만 당했다는 거. 아니 내 친구들도 당연히 자연스럽게 생각한 일들이었다는 것. 이것도 최근 1~2년 사이에 알게 된 사실이다.
이 글을 적기 위해서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진짜 이유가 뭔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렇게 택시기사들한테 무시를 당하는 이유는 '여자라서'인 것 같다. 아니면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한두 명도 아니고 이렇게 많이 바보 같이 당해온 게.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지금 내가 살면서 겪어온 일화를 되돌아보면서, 가장 최근에 겪은 이 일까지 다시 곱씹어 보면서 내린 결론은 아무래도 이거다.
'여자라서' 택시기사가 무시하는 거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