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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에 바라보는 24년

아무것도 안 했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by 단새

시간은 참으로 덧없고 빠르다.

연말 분위기 안 난다며 이불속에 뒹굴거린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새해 하고도 열흘이 지났다.

개인적으로 2024년은 참 다양한 일을 했다.

2023년도 만만치 않았지만 2024년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연말에 한 해를 돌아보면 매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진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또 한 해가 가는구나.'

그리고 1년 동안 진짜 뭐 했더라? 하고 하나씩 적다 보면 또 매년 하게 되는 말이 있다.

'어... 생각보다 뭘 많이 했잖아?'


작년 이맘때쯤에도 진행했던 2023 Recap. 올해도 해보자.




상반기 - 스몰윈의 시작


나에게는 이제 1년밖에 되지 않았단 사실이 믿기지 않는 부업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프로크리에이트 챌린지 호스팅.

프로크리에이트는 그림, 특히 인스타툰을 그리는 분들이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앱이다.

이 앱은 기능이 워낙 많아 처음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진입장벽이 있는 편인데

그 부분을 도울 수 있는 '왕초보를 위한 프로크리에이트 챌린지'를 강의식으로 진행했다.

주 1회 약 한 시간 정도, 한 달간 기본 버튼 이름 배우기부터 그림 완성까지 진행하는 커리큘럼으로 운영했고

4번 모집하여 4번 다 오픈에 성공하였다. 약 스무 명과 네 번의 챌린지를 함께한 것이다.

이 챌린지를 통해 커리큘럼을 기획하고, 상세 페이지를 만들고, 모임을 운영하는 등

전에 해보지 못한 경험들을 해볼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여행 맞춤 일정 서비스로, 크몽 비슷한 플랫폼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사전조사나 일정수립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신해 요구사항에 맞춘 일정표를 작성해 주는 서비스로, 정확하게는 23년 12월부터 시작해 어느새 1년 넘게 운영 중이다.

사이트 측에서 매출을 엑셀에 기록해 주는데, 지난 한 해 동안 총 37건을 판매했고 매출은 약 175만 원이더라.

수수료를 뗀 수익 자체는 소소한 용돈 수준이긴 하지만 꽤 많은 판매를 이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단가 자체로만 따지면 최저시급도 안 나온 수준이다보니 이 부업에서 얻은 스몰윈은 수익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상상만 해오던 서비스를 실제로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깨달은 인사이트에 대한 것이다.

지레 했던 걱정은 그리 문제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생각도 못한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그런 경험들이 '상상만 하는 것'과 '실제로 해보는 것'의 차이를 깨닫게 해 주었다.

이것이 나의 스몰윈이었다.



중반기 - 시도, 그리고 배움



가장 많은 시도와 배움이 스쳐 지나간 것은 2024년의 중반, 한창 더위가 찾아올 무렵이었다.


가장 큰 시도는 단언컨대 자취를 시작한 것이다.

자취 자체가 처음은 아니지만, 본가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한 것은 참으로 큰 용기가 필요했다.

대학 시절 편도 1시간 반 거리를 통학하면서도 '같은 도시 안인데 무슨 자취야!'라며 자취를 반대했던 부모님.

그 기억이 강렬해서인지 차로 고작 20분 정도 거리에, 취업을 한 것도 무엇도 아니면서 아무 이유도 없이 자취를 시작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무모함에 가까운 발상이었다.


하지만 외출은커녕 본가의 조그마한 방 밖으로도 전혀 나가지 않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타지에서 자취할 때 나 자신도 놀랄 만큼 부지런히 살림하고, 요리하고, 외출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우연히 찾아온 좋은 매물을 잡았다. 본가와 왕복하며 지내던 망설임의 시간도 잠시,

반년이 조금 지난 지금 자취는 내가 2024년에 한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이 자취방이 있었기에 앞서 말한 프로크리에이트 챌린지와 같은 시도들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고

집 근처 공원에 나가 어릴 때 미처 배우지 못한 두 발자전거 타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또 해외 렌트는 꿈도 꾸지 말라며 겁을 주던 부모님의 목소리로부터 멀어졌기에 국제면허증을 발급받고

오키나와 여행에서 처음으로 성공적인 일본 렌터카 운전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 달 동안 매일 세 장 이상 그림을 그리는 오문님의 서바이벌 챌린지,

웹툰과 인스타툰 모두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수무님의 만화 연출 강의에 참여한 것도 이때였는데

비록 불성실한 요즘의 나날에 퇴화하고 말았음은 차치하고 본다면

단기간의 배움으로 비약적인 성장이 있었던, 그런 중반기였다.




하반기 - 누가 뭐래도 가장 큰 성취는



2년의 공백기를 끊은 취업일 터다.

나의 자취 계약 기간은 1년이었는데, 처음 이 방을 계약하며 나 홀로 했던 결심이 있다.

'이 방에서 이사 나가기 전에 취업한다.'

딱히 집 나갈 이유 없이 결정한 자취였기에 나름 스스로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최소한 이 방을 나가기 전, 가급적 2024년 안에 취업을 하겠다는 마감 기한을 잡았었다.


물론 그런 결심을 했던 것에 비해 노력은 적었다고 생각한다.

앞선 상반기와 중반기 요약만 봐도 드러나는 사실이지만, 매일 채용 공고를 체크하고 하루 한 개씩 이력서를 뿌려도 모자랄 불경기에 취준은커녕 프리랜서 라이프에 대한 열망만 불태우고 있었으니.

(완전히 까먹고 있었는데 취업목적의 부트캠프에 참여를 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으니 패스하자)


다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정확히는 바닥을 보이는 잔고에.

구직활동 지원금을 신청하면서 매 달 상담을 나가면서야 겨우 채용 공고를 챙겨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이건 어지간하면 합격하지 않을까?' 싶은 공고를 발견했다.

짧은 계약기간, 다소 먼 통근거리, 요구되는 경력보다 오버스펙인 나의 이력. 이건 된다.

그럼에도 사람 일은 모른다며 지원했고, 면접을 봤고, 현재는 출근 중이다.


취준이 끝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도 하지만

그럼에도 회사 밖에서 안으로 한 번 들어가는 그 벽이 얼마나 두터운지 알기에, 조금은 더 수월하게 다음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하고 있다.






희미하다 못해 증발해 버린 기억에 앨범을 월별로 다시 보았다.

굵직한 것만 요약했지만 그 사이사이 자잘한 일들까지 합쳐보면 정말 월별로 뭐가 있었던 한 해였다.

'나 이렇게까지 위기의식이 없어도 되는 걸까?' 이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굵직한 목표 하나 없이 시작했던 것 치고 제법 많이 애썼던 한 해였구나 싶다.


그래서일까.

어떤 2025년을 보내고 싶은지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안정'이다.

아, 2024년 나의 환경도 마음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구나 싶었다.


우째도 힘껏 한 해를 살아낸 나에게 감사하며

어느새 열흘 넘게 지나버린 새해도 힘껏, 그리고 느슨히 살아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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