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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상의 기록 Feb 13. 2024

오후 반차를 쓰게 한 파란 약

매트릭스에서의 파란 약을 경험하다.

오후 반차를 쓰게 만든 매트릭스의 파란약

1. 와이프가 꽤 오랫동안 기침을 달고 살았다. 딱히 열이나 몸이 아픈 것이 아니고, 그냥 기침만 심하게 하는 정도?  ‘같은 집에 살아도 나는 걸리지 않네?’ 하며 까불다가 연휴 마지막날 결국 나도 밤새 기침에 잠을 설치게 되었다. (와이프는 이런 나를 보며 쌤통이라고..) 다음날 출근하기 전 혹시나 해서 약상자를 찾아보니 저 파란색의 요상한 기침감기약이 나오길래 한알 까먹고 출근을 했다가… 활기차게 일을 시작해야 하는 연휴 후 첫 출근날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게 되었고, 컨디션까지 좋지 않아 결국 오후 반차를 내게 되었다. 매트릭스에서 나오는 빨간약은 고통스러운 진실을 보게 하는 약이고 파란 약은 평화스러운 거짓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는데.. 나는 매트릭스에 나오는 파란 약과 똑같이 생긴 저 약을 먹고 무기력하고 평화스럽게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중에 와이프가 약국에 가서 기침감기약을 달라고 하니 약사가 효과가 좋은 약이 있다고 또 처방해 준 게 또 저 약.. 그러면서 자기 전에만 먹으라고… 이런 약을 아침 출근 전에 먹다니… 아마도 연휴의 끝이라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주하기 싫어서 무의식적으로 파란 약을 먹은 게 아닐까?

매트릭스 속 한장면, 진짜 똑같이 생겼다.

2. 내가 좋아하는 박찬일 셰프가 책을 내였다 <밥 먹다가, 울컥>  박찬일 셰프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라져 갔던 모든 것들, 그중에서 박찬일 셰프는 노포를 특히 사랑했으며, 그 뒤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 속에 담아내어 사라지는 것들을 글 속에서 영원하도록 기록하였다. 박찬일 셰프의 글을 읽다 보면 지금은 사라진 정동의 <아지오>, 신림동의 <명일 삼겹살>, 홍대의 <수다 도서관>등 20대에 자주 갔던 곳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사진과 기억으로만 남은 지금은 와이프가 된 그때 당시의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며 자주 들리던 곳들. 가게가 사라지면, 단순히 음식뿐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나눴던 대화와 감정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누군가가 이렇게 책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들이 가득한 노포들을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가치인지를 알기에 박찬일 셰프의 신간은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달에 한 권 책 읽기 프로젝트의 첫 책으로 박찬일 셰프의 신간을 주문했다. 다시 읽고 브런치에 후기를 남겨야지.


3. 지금은 사라진 것을 이야기하다 보니 떠오르는 밴드 <로로스> 정규앨범까지 사며 정말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해체하고 리더였던 도재명만 활동하고 있다.  

로로스 - 방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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