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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상의 기록 Feb 18. 2024

밥 먹다가, 울컥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한다는 것

박찬일 셰프의 신간 ‘밥먹다가, 울컥’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자 주방장, 박찬일 셰프의 신간을 읽었다. <밥 먹다가, 울컥>  작가지만 글 쓰는 일이 전업이지 않는 사람, 오랫동안 자신의 일을 지키면서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그 너머의 이야기를 애정 깊게 글 속에 담아내는 사람. 그래서 나는 박찬일이나 차범근 같은 분들의 글을 좋아했다.  <밥 먹다가, 울컥>은 음식과 식당을 매개로 박찬일 셰프가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노포의 늙은 사장 이야기, 공사장 밥집으로 불리는 함바집의 거친 풍경, 대학교 앞 집회 후 모이던 술집.. 박찬일 셰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뼈다귀 해장국집 첫째 아들로 살아온 나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 같았다.


오래된 식당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다.  거동이 불편해 몇 달에 한 번씩 자식들이 내려오면 그 차편에 꼭 우리 집 해장국을 드시러 오시는 노인분들, 군시절 자주 왔다면서 제대 후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람들, 어색한 한국어로 주문하는 외국인 노동자 손님들… 아버지 병원 때문에 반차를 내고 부모님 식당에서 내려가면 서빙을 도와드리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가끔씩  몇몇 손님들은 내가 이 식당을 언제 물려받을 것인가를 궁금해했다. “우리 아들들은 다 안 물려받아~”  머뭇거리는 나 대신 엄마가 대답을 대신하면 언젠가는 사라질 부모님 식당을 벌써부터 아쉬워하는 눈치를 내비친다.


부모님이 더 나이가 드시면 뼈다귀 해장국집 첫째 아들이라는 이름도, 매년 11월 마지막주 500포기씩 하던 김장도, 큰솥을 옮기고, 하루 종일 주방에 서서 일하느라 생긴 지긋지긋한 우리 엄마의 허리와 무릎 통증도 사라지겠지…그렇게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져 간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 속에서만 잠시 머물다가 원래 세상에서 없었던 것처럼 기억 속에서도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박찬일 셰프가 집착처럼 기록하는 음식과 노포,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긴 <밥 먹다가, 울컥> 같은 책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아직 1/3 정도밖에 안 읽었다. 원래의 속도라면 한 시간이면 읽었을 책, 하루하루 아껴서 읽고 있다.

오래된 노포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박찬일 셰프도 오래오래 동안 관찰하고 기록하고 이렇게 책으로 내주길 바란다. 몇 주 뒤 광고 대행사 시절 함께 고생했던 직장 상사님과 함께 북한산에 오르기로 했다. 산에서 내려온 후 그 당시 광고주 미팅 후 함께 자주 가던 박찬일 셰프의 <광화문 국밥>에 가서 뜨끈한 돼지국밥을 함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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