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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상의 기록 Mar 09. 2024

네? 제 차를 박으셨다고요?

청계산 하산 중에 걸려온 전화

1시간 정도면 올라가는 청계산 매봉

지난주 컨디션 난조로 매주 다니던 등산을 한 주 쉬고, 이번주는 가볍게 청계산을 올랐다. 예전 광고회사를 다닐 때 매년 시무식을 청계산 등산으로 대신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청계산이 어찌나 힘들었던지..

청계산은 윈터골입구에서 올라가 다시 원점회귀로 내려오는데 올라가는데 1시간, 내려오는데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오늘 여유 있게 찬찬히 내려가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저기 09** 차주시죠?"

"네 그런데요?"

"어쩌죠.. 제가 주차를 하다가 살짝 긁은 것 같아서요."

"네? 제 차를 박으셨다고요?"

"네 정말 죄송합니다..."

"아.. 제가 내려가는데 1시간 정도면 내려갈 것 같은데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전화기 너머 매우 안절부절하는 젊은 여성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 톤으로 볼 때 운전초보가 확실해 보였다. 평소보다 빠르게 하산을 하고 주차장으로 가보니 어떤 여성분이 내 차 앞에 쪼그려 앉아 유심히 내차 범퍼를 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제가 주차하다가.."


"흠 한번 볼게요.."


헤드라이트 쪽 흰 페인트 흔적이 남아있었다. 딱 봐도 살짝 긁은 정도, 다행히 범퍼까지 들어가 먹지는 않았다.


"음.. 컴파운드로 하면 지워질 것 같은데.. 제가 어차피 오늘 세차할 예정이라 한번 지워보고 연락드릴게요"


"네.. 아까 그 번호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죄송해요.."


집으로 오는 길에 자주 가던 셀프 세차장에 들려 세차를 하고 컴파운드를 하나 사서 열심히 지우니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멀리서 보기에는 잘 보이지 않아서 아까 가해자(?) 여성분에게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제가 세차하고 컴파운드로 열심히 지웠는데 멀리서 보면 티는 크게 안 나는데 가까이서 보면 보이긴 하네요  그래도 운전 초보 신 것 같은데 앞으로 운전 조심하시고 제 차는 크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아이고 그러네요 ㅜㅜ 너무 죄송했습니다 ㅠㅠ 보상이라도 해드려야 하는 게 아닌지..ㅠㅠ 혹시라도 필요하시면 말씀 주세요!! 앞으로 더 조심히 운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에 괜찮아요 혹시 저 기다리느라 등산 못하신 게 아닌가요? 암튼 신경 쓰지 말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등산 다녀왔어요~ 저야 말로 등산 방해를 한건 아닌지 죄송하네요 남은 주말 잘 보내시고 약소하지만 커피라도 한잔하세요...!]


혹시나 모를 과도한 수리비 청구에 불안해했을 가해자(?) 운전초보 여성분에게 괜찮다는 문자를 보내니 스타벅스 쿠폰과 함께 사과의 메시지를 다시 보내왔다. 아마도 내가 차를 산 지 몇 년 안 되었으면 이렇게는 해결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또 조금이라도 무례한 모습을 보였다면 어떻게든 깐깐하게 수리비를 받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접촉사고를 내고 불안해하며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내가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진심을 담아 대할 때,  서로 간의 날카로운 부딪힘은 현저히 줄어들게 마련이다. 어쩌면 아주 큰 스트레스로 남을 일이 상대방의 진심 어린 사과와 '초보때는 그럴 수 있겠다'라는 나의 이해가 맞물려 이번 일은 작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다만, 나중에 이 가해자(?)분께서 반대로 나와 같은 상황을 겪게 되면 오늘의 기억을 되살려 넓은 아량으로 상대방을 배려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단상의 기록 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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