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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상의 기록 Mar 15. 2024

가게가 쉬면 막국수를 먹습니다.

천서리 막국수를 엄마와 먹다

엄마와 함께 먹은 천서리 막국수

부모님과 여러 볼일이 있어 오전 반차를 내고 본가에 다녀왔다. 해장국집을 운영하는 부모님은 설 이후로 쉬지도 못하고 일하시다. 최근 며칠간은 쉴 새 없이 바빠서 오늘 가게를 하루 쉬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식당이 자리 잡지 못해 장사가 오랫동안 잘 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부모님의 식당은 정기 휴일이라는 것이 없다. 가끔 너무 힘드실 때 주중 한 달에 하루 정도 가게문을 닫는 정도?  하루를 쉬면 하루 매출이 하늘로 사라지는 것과 같은 마음 때문이신지.. 아님 멀리서 오시는 손님이 많아서 그러신지..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은 쉬시라 하는데도 쉽지 않으신 모양이다. 


보통 점심시간이면 모두 매진이 되어 저녁까지 가게 문을 열고 일하시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지만, 그래도 사람도 쓰지 않고, 가게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시며 뚝배기를 나르며 무거운 솥단지를 뼈다귀로 가득 채워 끓여야 하는 해장국집 일은 칠십이 넘으신 두 노인네들에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엄마에겐 식당일이 메인이라면 아빠에겐 식당 재료로 활용되는 양파, 고추, 무, 배추.. 등 계절 채소 등을 직접 농사짓는 것이 메인이다. 한 푼이라도 재료에 들어가는 돈을 아껴보겠다고 오랫동안 인근 텃밭에서 농사를 지어오셨는데... 그놈의 농사.. 그놈의 농사에 쓰이는 농약 때문인지.. 아부지는 최근 몇 년간 파킨슨 때문에 고생을 하고 계시지만 오늘 본가에 내려가보니 모판에 또 무언가를 심을 파릇파릇한 종자를 키워놓고 계셨다.  또 날이 따뜻해지면 더욱 느려진 몸으로 여러 농사를 지으시느라 고생하시겠지.. 자식들이 아무리 뭐라 해도 소용이 없는 우리 아부지는 49년 고집 센 소띠 양반이다.


가끔씩 부모님이 가게문을 닫고 쉬는 날에 내려가는 날이면 그날 점심은 막국수를 먹으러 가는 날이다. 매일매일 펄펄 끓는 해장국의 가장 멀리, 반대편 끝에 있는 음식이라서 그런가. 엄마는 늘 ' 막국수나 후루룩 먹고 오자' 하신다. 그래서 우리 본가에서 막국수는 부모님의 휴일 음식이자, 잠시나마 해장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부모님만의 현실 도피를 위한 음식이 되었다.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는 천서리의 막국수 식당은 주문과 동시에 몇 분도 안돼서 막국수가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막국수가 나오는 속도가 아니라, 막국수를 후루룩 마시듯 드시는 엄마의 속도이다. 나도 음식을 빨리 먹는 편인데.. 엄마는 혹여 아들내미가 먼저 먹고 계산을 하러 갈까.. 서둘러 드시고 서둘러 카운터에 신용카드를 들고 계산하러 가신다. 휴일의 음식이지만 여유 있게 천천히 대화를 나누며 즐기는 음식은 아니라는 슬픈 음식이랄까.. 그나마 며느리들이 있으면 눈치라도 보시지만 아들들과 있으면 언제나 전광석화처럼 해치우신다. 


식당 쉬는 날, 엄마도 식사를 차리는 수고스러움에서 벗어나게 위해 언제나 선택되는 우리 식구 휴일의 음식 막국수는 늘 맛있고, 가게 안은 늘 정신없고, 항상 급하게 드시는 부모님 때문에 늘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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