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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상의 기록 Mar 29. 2024

편의성이 잠식한 깊이의 부재

이렇게 꼰대가 되어 간다.

내 하드디스크에 잠자고 있던 mp3 파일들

음악을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중학교 2학년 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 데뷔하고 나서였던 것 같다. 아부지 친구분이 우리 집에 놔두고 찾아가지 않았던 두꺼웠던 카세트 플레이어에 용돈을 모아 하나씩 샀던 카세트 테이프들을 정말 테이프가 늘어져라 들었었다. 그때 당시 쉬는 시간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플러스펜에 카세트 테이프를 꽂아 빙글빙글 처음으로 되감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세뱃돈을 모아 당시 용산까지 올라가 샀던 파나소닉 카세트 플레이어는 껌전지라고 얇은 건전지가 들어가는 모델이었는데.. 당연히 함께 구성품으로 들어가 있어야 할 이어폰과 일반전지 케이스를 따로 돈을 주고 샀었던..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사기를 당했던 기억이 난다. 


집에 나올 때 챙겨 나올 수 있는 테이프는 몇 개 되지 않아 학교를 가기 전에는 유심히 테이프를 골라야 했고 그때 당시 자주 들었던 뮤지션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015B, 이승환, 넥스트였었다. 정해진 테이프에서만 듣다 보니 A side는 물론 B side의 끝곡까지 얼마나 열심히 들었는지 모른다.


대학교에 올라가자 본격적으로 CD플레이어의 시대가 되어서 일주일에 5만 원 받는 용돈 중 1만 원은 꼭 CD를 한 장씩 샀었었다.  지금처럼 뮤지션이나 음악에 대한 정보가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던 시절. 어쩌보는 핫뮤직 잡지에서 소개된 앨범이랄지... 아님 너무나 유명해서 검증된 뮤지션들 위주로 고심에 고심해서 CD를 샀었는데... 그때 당시 한 30분을 고르고 있었어도 눈치 한번 안 주던 수원역 앞 작은 음반가게 사장님께 뒤늦게 감사를 드린다. 일주일 용돈의 20%를 CD 사는데 샀었기에 별로인 앨범을 사게 되면 그 후유증은 한 달 내내 지속되었었다. 그렇게 어렵게 구한 CD를 길거리에서 바로 비닐 포장을 뜯고 CD플레이어에 올려 감상을 시작하며 다시 학교버스를 타고 대학교 기숙사로 들어가 밤늦게까지 CD를 몇 번씩 반복해서 듣곤 했었다. 


군대를 다녀온 후 MP3 시대가 도래하자 나의 취미는 집에 쌓여있는 수많은 CD를 리핑해서 MP3를 추출해서 태그를 정리하고 앨범아트까지 정성스럽게 입혀 MP3플레이어에 넣어 듣는 것이었다. 앨범아트가 없는 음원들은 포토샵으로 뮤지션 이미지를 찾아 내가 직접 앨범아트까지 만들어서 업데이트할 정도로 정말 정성스럽게 관리를 했었는데... 어느 날 MP3 파일을 담아놨던 플래시메모리를 실수로 포맷하는 바람에 이 모든 몇 년간의 정성들이 한 번에 사라졌던 가슴 아픈 기억이...


마침 그때 다니던 회사에서 당시 SKT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멜론의 가입자 확보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었던 터라 그다음부터는 나도 CD와 MP3에서 벗어나 맘 편하게 스트리밍 서비스를 계속 썼었다. 


최근에는 굳이 돈을 내지 않아도 음악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진 건 너무나 편리하고 좋지만, 그만큼 음악을 대하는 자세는 예전보다 많이 게을러지게 되었다.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듣는 것 일은 어렵게 되었고 최근에는 음악 한곡 한곡을 되새김질하며 듣기보다는 그냥 스킵 스킵하며 듣게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아지게 되었다. 


가사집을 보며 가사를 외우고, 어떤 세션이 참여했는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작곡을 했었는지.. 왜 이 곡은 몇 번째 트랙에 넣게 되었는지... 앨범 컨셉을 어떠했는지.. 곡 하나하나를 파고들며 들었던 적이 언제인가 싶다.  애플뮤직을 실행하게 되면 첫 화면에 나오는 오늘의 추천음악들과 몇 번의 터치만으로 작은 화면에 펼쳐지는 수십만 곡의 음악들.. 음식으로 치면 산해진미가 펼쳐진 고급 호텔의 뷔페 같지만 막상 배부르게 먹고 나면 어떤 게 맛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달까?  오히려 식당 찾기가 어려운 곳에서 허기가 느끼고 들어간 국밥집에서 김치 하나만으로도 맛있게 먹는 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처럼,  예전 CD만으로 음악을 들었을 때의 행복감과 만족도는 그때가 더 높았었다. 


시대는 변화하고, 흐름은 거스를 수 없지만 스킵만으로 모든 컨텐츠가 평가받는 편의성의 시대에서 음악이라는 본질을 대하는 자세만큼은 변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멜론 TOP 100 혹은 드라이브할 때 들으면 좋은 음악,  운동할 때 신나는 플레이리스트, 휴식할 때 듣는 플레이리스트 등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수많은 플레이리스트 등이 추천해 주는 음악에서도 보석 같은 곡을 찾을 때가 있지만 몇 년이 지나도 그런 음악은 오랫동안 남는 곡이 아닌 잠시 스쳐 지나간 곡이 되곤 한다. 요즘 그래서 그런지 스트리밍 서비스보다는 예전 곡들이 담겨있는 아이팟 나노를 자주 듣게 된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가 젊을 때 좋았던 것들에만 빠져서 결국 꼰대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런 나를 보면 결국 나도 이렇게 똑같이 꼰대가 되어가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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