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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상의 기록 Apr 07. 2024

아버지가 준비하는 일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일


49년생 올해 76이신 우리 아버지가 몇 년 동안 형제분들과 함께 꾸준히 신경 쓰는 일은 충주에 있는 문중 납골당을 제대로 정비하는 것이다. 개인명의로 되어 있던 땅의 명의를 공동명의로 바꾸고.. 진입로를 다시 정비하고 다른 곳에 모셨던 할아버지를 이곳으로 다시 이장하고 3대의 이름까지 새겨진 비석부터 천주교 집안이기에 성모마리아상까지 (우리 집을 제외하곤 친가 대부분은 독실한 천주교 교인이다) 몇 년 동안 문중의 돈을 십시일반 모아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재정비를 해놓으셨다. 아부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니는 날에는 그동안 납골당을 어떻게 잘 정비했는지에 대한 아버지의 뿌듯한 보고를 운전하는 내내 듣는 것이 일반적인 병원을 다녀오는 풍경이었다 (왜 어른들은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 말씀하시는지...) 


충주의 시골 한구석, 아무것도 없는 납골당에 기력도 좋지 않은 큰아부지, 아부지, 작은 아부지까지 노인네들 세분이서 더우나 추우나 어쩌면 집착처럼 문중 납골당을 재정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식들에게 부담가지 않게 자신들이 갈 자리를 미리 만들어놓기 위함이었다. "납골당도 이제 어느 정도 마무리했으니 아부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자식들 속 뒤집어놓는 이야기를 자꾸 반복하시는 모양새가 묫자리 때문에 자식들 골머리 썩는 일을 안 하게 하겠다는 청풍김 씨 세 형제의 마지막 고집처럼 늘 들린다. 


그동안 묫자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조상들에게 예를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던 나에게 아부지의 이런 이야기는  잘못된 묫자리로 자식들이 혹여 안 좋은 일이 생길까 옛날 사람 특유의 고집과 쓸모없는 미신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이런 것 모두 무뚝뚝한 옛날 사람의 자식들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이었더라. 에휴.. 노인네들 진짜~! 



단상의 기록 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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