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테이프를 간직하세요"
내가 8살 정도 됐을 우리 집 서재에 있던 책장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들이 여러 권 꽂혀 있었다. 맨 아래 칸에는 엄마가 공부하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책들이 가득 있었고 아빠가 다달이 사 읽던 시사잡지 '신동아'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삼국지' 등등 주로 어린이 입장에서는 별로 펼쳐볼 마음이 들지 않는 어른스러운 제목의 책들이었다. 나는 읽어볼 마음은 없지만 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괜히 서성거리면서 책등을 훑어보곤 했다. 어른들의 비밀스러운 세계가 그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루는 전에는 없었던 것같이 낯선 노트 한 권이 눈에 번쩍 들어왔다. 투명한 분홍색 비닐 커버로 된 두껍고 큰 스프링 노트였다. 단추를 열어 노트를 펼치고 이내 익숙한 엄마 글씨를 알아볼 수 있었다. "노래방 테이프를 간직하세요"라고 쓰인 제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당연히 습작 노트였고, 지금 생각해봐도 굉장히 독자를 끌어들이는 신선한 제목이었다. 지금의 내가 그걸 발견했다면 약간은 훔쳐보는 듯한 마음으로 찬찬히 작품을 읽어봤을지도 모르는데, 여덟 살에게 그런 참을성은 무리였다.
곧바로 부엌에 있던 엄마에게 뛰어가 "엄마 이거 뭐야!" 하며 내 발견을 알렸다. 보물찾기 놀이에서 돌멩이를 들춰 그 아래 숨겨진 쪽지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책들 가운데 숨겨 두었던 습작을 난데없이 초등학생 딸에게 들켜버린 엄마는 깜짝 놀라면서 노트를 뺏어 들었다. 엄마는 질색하면서, 곤란해하면서 그걸 높은 데에 숨겼다. 내가 아직 내용을 읽지 않은 걸 알았지만 엄청나게 창피해했다. 나는 엄마가 그렇게 무얼 창피해하는 것을 처음 본 것 같았다. 나는 엄마의 신기한 반응을 끌어낸 게 바로 나라는 사실에 조금 신나고 우쭐했던 것 같다. 웃겨서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거기에 쓰여있던 게 뭔지에 대해서는 더는 관심이 없었다.
조금 후에 부엌에 가 보니 글씨가 쓰인 페이지들이 모두 휴지통에 들어가 있었다. 어떤 페이지들은 물에 젖어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설거지를 하다 나의 기습을 받은 엄마가 너무 당황한 나머지 곧바로 처분해버린 거였다. 지금은 엄마도 나도 그때의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 기록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분명하다. 그제야 나는 겨우 제목만 읽고 엄마에게 달려가 노트를 반납한 성급함이 너무너무 아까워졌다. "노래방 테이프를 간직하세요" 이 열 두 자 제목만 선명하게 새겨졌다.
예전에는 노래방에서 한참 놀고 나면 부른 노래들을 녹음해 테이프로 받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카세트테이프 자체도 옛날의 물건이 되었지만 노래방에서 테이프로 녹음을 해 주던 시스템은 그보다도 더한 유물이 된 듯하다. 어쩌다 내 목소리가 조금 들어간 영상만 돌려 봐도 너무 어색한데, 노래방에서 신나서 부른 노래가 테이프에 들어가 있다면 생각만 해도 낯이 뜨거워진다. 이 '녹음 시스템'이 오래 지속되지 않은 이유도 알 만하다. 더욱이 엄마는 노래는커녕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즐기는 타입이 아니다. 그런 엄마가 쓴 글이 '노래방 테이프를 간직하라'는 메시지라니. 그 글은 엄마와 성격이 반대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이었을까, 혹은 부끄럽더라도 소중한 기록을 남겨두자는 다짐이었을까.
창피하고 민망한 것, 꺼내 보기는 부끄럽지만 그래도 간직하고 싶은 것, 그러나 남들 앞에서 꺼내 보이기가 거시기할 뿐 사실 내 마음속으로는 좀 아끼는 것. 그런 게 노래방 테이프가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의 습작 노트도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생각하지도 못한 타이밍에 앞뒤 분간 못 하는 어린 딸에게 들키는 바람에 당황해 바로 없애버리기는 했지만, 간직했으면 참 좋았겠다. 육아와 가사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엄마가 노트를 펼치고, 펜을 들어 한 글자 한 글자 단어를 골라가며 썼을 그 글은 그렇게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이지 않았을까. 사소한 이야기는 없다고, 아직 준비되지 않았으면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고, 시간을 들여 다시 읽어보고 조금씩 손보다 보면 언젠가는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고, 부디 간직해달라고. 지금의 나는 그때의 엄마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때 엄마의 나이가 서른여덟. 지금의 나보다 겨우 여덟 살 정도 많았던 셈이다. 가상의 독자에게는 '노래방 테이프를 간직하라'고 말해 놓고, 자기의 노래방 테이프는 흔적도 없이 태워버린 사람. 나는 그 공책이 새삼 너무 아까워서 마음이 아득해진다. 가족 중 누구도 함부로 열 수 없는 엄마의 서랍이 있었다면, 공책은 아직 거기에 무사히 놓여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를 제외한 사람은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엄마만의 서재가 있었다면 그런 습작 노트가 책장을 다 채우도록 여러 권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삶으로 읽고 몸으로 쓴다는 이 따뜻한 글쓰기 수업을 내가 아니라 엄마가 듣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커 가는 딸들에게는 새 책상을 사주고 각자의 방을 만들어줬지만 자기의 방을 두고 글을 더 써볼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뚝딱뚝딱 내 세상을 짓게 하려고 엄마는 자기의 방을 내주었다. 이렇게 좋은 것을 받아 놓고 너무 자주 잊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