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선배를 미워하다가 일본어책을 산다

by 서커스


멋진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을 인생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살았다. 학교에 다니면서 놀고 싶은 마음을 무시하고 공부를 한 것이나, 채용 정보를 확인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닌 것은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여행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뭔가 내 미래와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순간에는 태도가 진지해지곤 했다. 좋은 직업에 대한 생각은 10대와 20대 때의 내 삶의 태도를 규정하는 데에 아주 중요했다.

내가 가진 이해력과 성실함, 순발력 같은 것들을 총동원해서 들어가고 싶던 회사에 들어왔다. 이제 3년이 다 돼간다. 나에게 어울리는 직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일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당연히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었다. 이 회사에서 나에게 원하는 것이 뭔지 파악해서 가장 적절한 행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또 이 회사에서 칭찬받는 태도가 뭔지도 눈치껏 살폈다. 가능하면 재빠르게 그런 미덕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것은 앞으로도 내내 훈련해야 할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기자에게 마찬가지일 것이고 확장하면 어떤 직업이든 마찬가지일 '핵심 기술'이다. 1년 차에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이게 가장 힘들었다. 쓰고 싶은 기사가 머릿속에 막 떠오르는데 그게 손가락 끝에서 끝내 구현되지 않는 답답함에 머리를 쥐어뜯는 게 일상이었다. 지금은 훨씬 나아졌다. 여전히 내 한계가 아쉽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기사를 쓰다가 영영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복잡한 내용을 더 이해하기 쉽게 써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그런 방향으로 성장하는 궤도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회사에서 기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나는 기사를 쓸 때는 명민하고 날카로우려 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20살가량 많은 데스크를 대할 땐 순하고 멍청하려 한다. 사실 나는 몇몇 선배들이 좌절된 인정욕구와 자격지심, 두려움 때문에 괜히 더 후배를 몰아세운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을 전혀 피력하지 않는다. 그 화살이 나를 향할 때도 무시하는 대신 눈빛을 텅 비우고 주눅이 든 척한다. 선배가 쥔 힘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척한다. 선배가 나보다 강해서 내가 두려워하는 척한다. 그리고 선배의 하찮은 관심사에 나도 관심이 있는 척한다.

이 과정이 아주 영리한 선택일 뿐이어서 회사에서 연기를 하면서도 내 생활은 그대로라면 참 좋겠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고 싶은 말을 안에만 쌓아두고, 상대방을 만족시킬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속이 막 문드러지는 것 같다. 생명력이 소진되는 것 같다. 집에 가면 체력은 남아도 정신이 갉혀서 몸이 축 늘어진다. 가끔은 아무도 나에게 이런 지시를 내리지 않았는데 혼자 끙끙대느라 에너지를 쓰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간혹 제 생각이나 개성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입방아의 대상이 되는 동료나 후배들을 보면 '나를 죽이고 사는 것'이 회사가 원하는 게 맞다는 확신이 또 든다.

이게 입사 3, 4년 차의 고민이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인지, 아니면 익숙해진다는 것은 단지 내가 생명력을 소진하는 일에 둔감해진다는 의미일 뿐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아직 모르기 때문에 일단은 그대로 간다. 하지만 만약 내가 후일에 '아 이건 나에게 독이구나, 이곳을 떠나야겠다'라는 결론을 얻었는데 이미 선택지가 너무 좁아져 있지는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일본어책을 사거나 토플 학원을 알아본다. 티도 안 나게 조금씩 하는 공부지만, 고민이 고민으로만 끝나지 않고 뭔가 한 톨이라도 인생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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