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파크] 1.

by 서커스

1.

경기도 시흥에는 인공서핑장이 있다. 여기에 이런 게 있다는 걸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 파도를 만들어서라도 서핑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많은 일 중 하나일 뿐이다. 나도 웨이브파크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 한 채로 잘 지내왔다. 나는 사건사고를 취재하는 사회부 기자였다가, 통일·북한·외교 기사를 쓰는 북한팀 기자였다가, 또다시 사회부 법조팀으로 자리를 옮겨 법원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5년 차 기자였다. 실수하거나, 해야 할 일을 미루다 대가를 치르거나, 쓰고 싶은 만큼 글이 빨리 잘 써지지 않아 머리를 싸매면서 차곡차곡 몸에 독소를 쌓았다. 그리고 이런 것들보다는 아무래도 말 한마디, 1초의 눈빛에도 독성이 깃든 독한 선배들을 미워하면서 그들에게 독을 쏘지 못하고 내 몸에만 매일매일 뭘 쌓아갔다.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 말들이 몸 안쪽 어디에 쌓여가고 있었던 것 같다.

"선배, 그렇게 말하는 건 너무 예의가 없네요. 정중하게 다시 말해보세요."

"선배가 손을 대니 기사가 이상해지네요. 국어 실력이 형편없으시네요."

"선배는 혹시 어렸을 적 부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매번 좌절되어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힘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결핍을 해소하는 타입인가요?"

나는 이런 말들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 번도 안 했다. 비슷한 말이라도 입 밖으로 꺼낼 생각도 안 했다. 저런 말들이 하고 싶었던 때에 내가 대신 한 말은

"넵"

"네 선배 죄송합니다"

"넵 선배 숙지하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것들이었다. 절대 하고 싶지 않은 말을 억지로 꺼내서 할 때마다도 또 독이 쌓였다. 쌓이다 못해 끝내 피부를 뚫고 넘쳐흘러 버렸다. 원인 미상의 발진, 가려움증. 극심한 가려움. 자려고 누웠는데 팔에 두드러기가 조금 돋았길래 내일이면 괜찮아지려나 했는데, 아침엔 가려움이 심해 잠에서 깼다. 그러고는 며칠째 붉은 기운이 기세를 떨치면서 점점 더 넓게 퍼지고, 가려움도 더 심해진다. 갈고리처럼 피부 안쪽을 파고드는 것 같은 가려움인데, 환부가 너무 넓어져 감히 긁지 못하고 조용히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샤워할 때 좀 지나치게 뜨거운 물을 틀어서 가려움을 해소하는 것만은 참지 못한다. 그러고 나면 잠깐은 좀 가라앉는 것 같지만, 오히려 발진 부위가 성이 나서 몸 전체에서 심장이 뛰는 것 같아진다. 가려움은 자려고 누웠을 때 제일 심해진다. 나는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 날 출근할 자신이 없어 연차를 쓰기로 했다. 1, 2주 정도 쓰게 되려나 했는데, 결국 병가에 휴직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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