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파크] 3.

by 서커스

3.

웨이브파크에서 서핑 강사 겸 라이프가드로 일하며 쉬는 날 공짜로 서핑을 타는 우재가 대회 다음날과 그 주에 뭘 하는지는 잘 안다. 우재는 그 주 월요일과 화요일, 수요일이 휴무였다. 직원들은 쉬는 날에 3세션을 무료로 탈 수 있다. 그리고 다소 힘든 근무조를 맡으면 4세션까지도 무료로 탈 수 있다. 우재는 지난주에 이 근무조 투입을 위한 추가 교육을 받았다. 1세션을 더 타기 위해서다. 직원들을 위한 특별 세션까지 더해 많으면 5번까지도 서핑을 한다. 그러고 웨이브파크 근처 원룸인 직원 기숙사로 돌아오면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넣어 볶음밥을 해 먹거나 피자나 치킨을 사 와서 얼른 먹는다. 몸이 너무 힘드니까 먹다가 자기도 한다. 치킨을 먹으면서 여자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우재는 갑자기 말을 멈춘다. 잠깐 침대에 누웠다가 순식간에 잠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통화 중이던 남자친구가 갑자기 잠들어버리는 일에 점차 익숙해져가는 여자친구다. 조금 자게 내버려 두고 휴대폰을 좀 들여다보다가


"우재야 잠들었어?"


라고 물어보면 우재는 이내 잠에서 깬다. 다시 치킨을 먹는다. 아직 샤워도 하지 않았다. 우재는 저녁나절을 잠을 참으며 밥을 챙겨 먹고, 씻기를 귀찮아하고, 뒷정리는 할 엄두도 내지 않은 채로 비몽사몽하며 보낸다. 우재와 함께 근무하는 다른 직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웨이브파크 근처에 살면서 휴무에 공짜 서핑을 하려고 입사했다. 저녁엔 스케이드보드를 타면서 지상에서 서핑 연습을 하기도 한다. 쉬는 시간엔 촬영한 영상을 돌려보거나, 잘 타는 선수들의 시합 영상을 찾아본다. 우재는 원래 11월 말에 파크가 문을 닫으면 인천 집으로 돌아가 내년 5월에 있을 해양경찰 시험을 준비할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휴무마다 4∼5시간씩 맹연습을 하고, 스물넷의 젊은 몸에 운동신경을 타고난 탓에 실력이 너무 금방 늘어버린다. 이런 기세로 성장하는 걸 몸으로 느끼고 나면 겨울이 왔다고 해서 그만두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 된다. 우재는 해양경찰 시험 준비는 언제일지 모를 미래로 미뤄버린다. 이번 겨울서핑을 제주에서 할지, 강원도 양양에서 할지, 강릉이나 속초에서 할지만을 고민할 뿐이다.


다시 나로 돌아온다. 기자가 됐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잊지 않는다. 1년 넘게 언론고시를 준비했고, 드디어 합격했을 땐 다리가 풀려 주저앉으며 울었다. 너무 기뻤다. 나는 기자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글쓰는 것을 좋아하고, 더 나은 문장을 고르는 일이 즐겁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는 순간이 짜릿하다. 그리고 내 손끝으로 단어를 하나하나 골라 기사를 쓰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에 보람도 느낀다. 어떨 땐 기사를 쓰는 손끝이 경쾌하기도 하다.


그러나 노트북을 두드리는 손끝이 경쾌한 건 아주 드물고 대개는 무표정으로 보람 없이 재미없는 기사를 억지로 쓴다. 매일 매시간 써야 하는 것들이 있고, 나는 이런 기사들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기를 포기한 채 기사 공장처럼 글을 써낸다. 언론사는 직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쓸 수는 없다. 매번 다르지만, 일주일에 보통 써야 해서 쓰는 무의미한 기사가 15개 정도, 써야 해서 쓰지만 재밌는 기사가 1개 정도. 노트북을 두드리는 손이 춤추는 듯한 재밌는 기사는 글쎄 6개월에 한 번 정도 있으려나, 아니면 5년의 기자 생활에서 이런 경험은 5번 이내이려나.


나는 점점 지루해지고, 재밌어 보여서 선택한 직업이지만 결국 직장생활이란 건 지겨움을 참는 것이구나 생각한다. 자아는 지워지고 회사에 더 맞는 사람이 되어간다. 자존심이 강하고 늘 내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는 이걸 참기 어렵다. 약간 위기감을 느끼면서 자아가 흐릿해지는 것을 막으려 몸부림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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