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에 180만원인 요가

소설

by 서커스

서울 광화문에서 일하는 직장인 재은은 최근 회사 근처 요가학원에 등록했다. 출근 전 이른 아침에 들러 몸을 움직이며 하루를 가뿐하게 준비하거나, 퇴근 후 뻐근해진 몸을 풀자는 생각이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요가학원답게 아침 수업이든 저녁 수업이든 사람이 꽤 많았다. 이벤트 중이라 광화문 물가를 고려하면 아주 싼 값에 등록했다.

두어 번 요가수업을 들은 뒤 선생님은 재은을 불러 힐링 룸에서 힐링 코스를 한 시간 정도 해주겠다고 했다. 헬스장의 무료 PT처럼 신규 등록회원들에게 한 번씩 해 주는 거였다. 온열 마사지기로 뜨끈하고 노곤하게 마사지를 받고, 이후엔 한방차를 마시면서 상담을 했다.

"목이 많이 아팠겠는데요. 가슴이 꽉 막혀있어서 순환이 안 되는 상태예요. 다리가 좀 붓는 거 본인도 알고 있으세요?"

등과 목의 뭉친 곳들을 꾹꾹 눌러본 선생은 재은에게 물었다.

퇴근 후 요가수업엘 갔으니 다리는 물론 조금 부어 있었지만, 평소에 부종이 심한 편은 아니었다. 또 직장인 여성 치고 저녁에 다리 안 붓는 사람이 있을까.

선생은 이어 가슴이 꽉 막혀있다는 말을 강조했다.

"가슴에 감정이든 생각이든 뭐가 너무 오랫동안 꾸역꾸역 쌓여서 답답한 거거든요. 그게 분명히 이유가 있어요. 지금은 모르지만 저와 함께하다 보면 알 수 있겠죠. 회원님은 특히 감각이 아주 예민한 분 같아서, 효과가 좋을 것 같네요. 꼭 같이 하고 싶어 지네요"

'저와 함께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곧 밝혀졌다. 선생은 각종 프로그램과 가격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재은에게는 10회에 180만 원인 테라피 코스를 추천했다.

"뭘 하는 건지 설명을 좀 듣고 싶은데요. 마사지인지, 상담인지, 테라피인지…"

"이건 아시겠지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일단 몇 번은 마사지로 몸을 풀어드릴 텐데, 그러고 나면 마음이 열리고 더 깊은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재은은 처음부터 돈을 더 낼 생각은 없었지만, 이상한 말들이 나오자 호기심에 선생의 말을 듣고 있었다. 새로운 종교인 것 같기도 하고, 다단계 사업 같기도 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는데 선생의 말이 길어지자 재은은 대충 마무리를 하기 위해 '생각을 해볼게요' 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때까지 내내 친절했던 선생은 표정이 굳었다. 얼핏 무섭기도 하게 굳었다.

"생각을 해 볼 거면 그냥 하지를 마세요"

뭘 파는 사람이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뜨악하면서도 찝찝했다. 이런 전략에 넘어가서 그 자리에서 180만원을 결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외롭고 피로한데, 이걸 같이 풀어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는 게 구원 같아서 척척 돈을 내버리는 사람도 있겠구나 싶었다.

방금까지 같이 요가하던 사람 중에서도 이미 수백만 원을 쓴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동네에 있는 요가학원에 다닐 때와는 달리 또래 직장인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이상했다. 4∼50대가 많아 보였고, 요가학원에 다니는 젊은 남녀를 보면 느껴지기 마련인 개운함이나 생기 같은 게 없었던 것 같았다.

종교를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물건을 강매하는 것도 아니며, 혹여나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하는 것도 아니라면 딱히 문제 될 것은 없기는 했다.

재은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서비스에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붙여 파는 것뿐인데, 누군가는 그걸 살 수도 있는 거였다.

10회에 180만원인 '선생과 함께하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아마 정말 그게 필요해서 돈을 내는 걸 거고, 선생은 '생각을 해 볼 거면 그냥 하지를 마세요'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안 살 거면 죽어라'라며 협박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 게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걸 팔아주는 게 고마운 일일지도 몰랐다.

지압원이나 마사지샵에서 1시간 동안 마사지를 받거나 따로 1시간 정도 심리 상담을 받는다고 해도 1시간에 18만원 정도의 고가인 서비스는 드물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내 발로 찾아가야 하는 서비스보다 먼저 주겠다고 다가와주는 서비스가 눈물 나게 고마울 수도 있다.

그래도 좀 더 좋은 세상이라면 그 사람들은 1시간에 5만원 정도만 쓰면서 마사지를 받고, 한 번에 10만원 정도만 쓰면서 전문가한테 심리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또 10회에 180만원인 프로그램이 끝나갈 때쯤 또다시 20회에 300만원인 다른 코스를 추천받거나, 1회에 10만원인 세미나를 주말마다 듣지는 않아도 될 수 있다.

그러나 10회에 180만원인 코스에 척척 돈을 낼 수 있는 그들은, 혹시나 매번 대출을 받아 이상한 데 돈을 쓴다고 우려하는 가족이 있지 않은 이상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기가 어렵다. 나라의 복지 시스템에서 관리받기에는 아마 돈을 나쁘지 않게 벌 것이다.

하지만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났다면 그들은 180만원으로 더 많은 걸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용도 애매한 힐링 코스에 홀린 듯 수백만 원을 쓰는 것이 정말로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슴이 갑갑한 걸 풀어준다고 해서 지갑을 열었는데, 아마 갈수록 가슴이 갑갑하고 외로워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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