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서핑짐을 다 챙겨 밤 열한 시가 넘어 굳이 집을 나섰다. 푹 자고 다음 날 웨이브파크에 갈 생각으로 셔틀을 예약해 두었었지만 굳이 택시를 불러 밤에 시흥에 갔다. 우재가 와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A는 우재를 그 정도로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이유로 그 밤에 택시를 잡아탔는지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그를 보러 갔다. 와달라고 사정하던 우재는 하지만 자고 있었다. 방에 불은 꺼져 있었다. 방이 무척 지저분했다. 우재의 방은 늘 지저분했지만 그날은 특별히 더 더러웠다. 아침에 먹고 남은 양념치킨이 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빨래할 옷들은 한 쪽에 쌓여 있었는데 다음에 또 입으려고 그냥 벗어둔 옷들과 구분되지 않았다. 이불 커버도 벗겨져 있었다. 우재는 커버를 벗긴 매트리스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양념치킨 냄새가 진동했다.
우재는 인기척에 이내 깨기는 했지만 술에 취해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다. 애교인지 술주정인지 모르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도 했다. A는 그래도 우재가 참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사랑스럽지는 않아도 참 예쁘게는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A는 아무래도 우재와는 얼른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쁘게 생긴 얼굴을 빼놓고는 사랑할만한 구석이 없어진 것이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하룻밤 술주정을 들어주고 자고 일어나 섹스하는 것 정도가 아주 억울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재는 A를 너무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제대로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면 아직 자기가 할 일을 찾지 못하는 채여서 누굴 사랑할 경황이 없는 것도 같았다.
물론 우재는 술에 취해 잠이 쏟아지는데도 30분 정도는 있는 힘을 다해 잠들지 않고 참았다. 그리고 A가 치킨 냄새가 난다고 하자 치킨 박스가 놓인 탁자를 부엌으로 옮겨 놓았고 부엌 덧문을 닫아줬다. A가 아직 덜 마른 수트를 드라이백에서 꺼내 세탁기 위에 올려놓자 누운 몸을 일으켜서 수트를 A의 키가 닿지 않는 옷걸이에 걸어 주었다. 우재는 며칠 전엔 귤을 먹다가 몇 개가 얼어있어 더 맛있는 걸 알고는 언 귤만을 골라 A 앞에 놓아줬다. 우재는 군대 시절 찾아서 투박하게 보관해오던 네잎클로버를 A에게 줬다. 운이 좋아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재는 뉴질랜드 유학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 보관하던 뉴질랜드 지폐 한 장도 A에게 줬다. 두 번째 만남엔가는 A가 커피를 좋아한다고 한 걸 기억해 카페 쿠폰을 선물해줬다. 딱 한 번은 A가 타는 초급 세션에 들어가 보드를 밀어줬다.
다음날은 우재의 휴무일이었다. 우재는 10시 세션을 탈 거였고 A는 11시 강습을 들을 거였다. 9시 반쯤 같이 방을 나와 파크로 향하는데 우재는 카버보드를 탔고 A는 걸었다. 걷는 속도가 훨씬 느리니까 우재는 먼저 파크에 가 있겠다고 했다. '누나 이따가 재밌게 타! 나 먼저 갈게' 말하는 우재는 그래도 정말 잘생겼었다. 하지만 유유히 멀어지는 우재의 뒷모습을 보면서 A는 오늘이 헤어질 날이라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