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재는 일주일에 두 번 있는 휴무일에 가장 바쁘다. 10시와 12시, 오후 2시, 오후 4시 세션을 타고, 화요일이나 목요일이면 오후 7시쯤부터 틀어주는 직원용 세션도 탄다. 꼬박 5시간을 내내 서핑을 하는 셈이다. 정해진 개수만큼 인공파도가 나오는 웨이브파크에서 서핑을 5시간 한다는 건 언제 탈 만한 파도가 올지 모르는 바다에서 5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5시간 동안 5분도 쉬지 않고 파도를 타고, 패들해 다시 라인업에 올라가고, 또 바로 파도를 탄다는 의미다. 우재는 그렇게 휴무일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배가 너무 고픈데 머리만 대면 잠들 것처럼 피로해 밥과 잠 사이에서 늘 고민한다. 그러나 밥을 건너뛸 수는 없으니 졸면서라도 피자나 치킨을 욱여넣는다.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퇴사하는 직원이 점점 늘고 있다. 몇 달을 같이 보내며 가까워진 직원이 퇴사하면 남은 직원들과 퇴사 파티를 한다. 누구 한 명의 방에 모여서 술을 마신다. 휴무 첫날엔 친하게 지내던 형의 퇴사 파티에서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셨다. 평소보다 아주 많이 마신 것은 아니지만 술을 해독할 체력이 남아있지 않아서인지 소맥 다섯 잔에 이미 잠든 것 같은 상태가 됐다. 우재는 중간에 슬쩍 자리에서 빠져나와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나 친한 형 퇴사 파티해서 술 먹었어. 아까 바로 같이 이동하느라고 말을 못 했어. 미안해
"오늘 퇴사 파티했구나 재밌었어? 많이 마셨어?"
"어어엉 나 취했어. 누나 미안"
우재는 애교를 부린다. 평소에도 조금 그렇지만 술에 취하면 자꾸 칭얼대고 애교를 부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서핑하는 동안에도 그렇고 퇴사하는 형의 방으로 갈 때도 애인에게 연락을 안 했다. 집에 가는 길에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는데 애인은 별로 기분 나빠하지는 않는 눈치다.
"누나 지금 와줘. 나 누나가 너무 보고 싶어. 제발 와줘!"
"내일 아침에 갈 건데 조금만 참아"
"안돼 보고 싶으니까 지금 와"
"나 도착하면 너 자고 있을 거잖아"
"아니야 자기야 나 진짜 안 잘게. 진짜 안자고 기다릴게. 얼른 와줘"
"나 진짜 가?"
"응 나 진짜 진짜 진심이야. 지금 와줘"
"알았어. 지금 출발할게"
애인은 다정하다. 성격이 센 편인 것도 같지만 우재에게는 다정하다. 서핑하고 와 피곤해하면 마사지를 해주기도 하고, 지저분한 집을 치워준 적도 몇 번 있다. 퇴근 시간에 맞춰서 밥을 차려놓고 기다릴 때도 있었다. 같이 있으면 늘 웃음이 난다. 쇼미더머니 새 시즌을 같이 보고, 나는솔로를 보면서 이 사람은 어떤 스타일일 것 같다, 이 사람하고는 100억을 줘도 결혼은 못 하겠다, 하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애인은 우재가 이전에 만난 사람 중 제일 똑똑하다. 서핑하지 않을 때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고 한다. 애인은 우재가 이름만 들어 본 좋은 외고를 나왔고, 명문대를 졸업했다. 그래도 자신 정도면 이런 멋있는 여자와 연애하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은 애인이 가진 것들과 본인이 가진 것을 가늠해보면서 좀 기죽는 것도 사실이다. 우재는 올해 전역해 아직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서핑은 물론 엄청 잘한다. 우재는 애인에게 서핑 잘 타는 모습을 어필해보려고도 한다. 애인은 너무 멋지다고, 지난번보다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라고, 실력이 어쩌면 그렇게 빨리 느냐고, 너무 재능있다고 칭찬을 쏟아내 준다.
우재는 스스로 꽤 잘났다고 생각은 하지만 애인과 같이 있으면 이 생각에 더욱 확신이 든다. 애인은 우재가 똑똑하다고 말해준다. 우재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애인은 공부라는 건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거고, 우재는 머리가 좋지만, 다른 게 더 재밌어서 굳이 공부를 안 한 게 아니냐고 말한다. 우재는 듣고 보니 맞는 말 같다. 우재는 게임이 재밌었고 축구가 재밌었다. 게임도 잘했고 축구도 잘했다. 뭘 하든 빨리 배우고 같이 시작한 다른 친구들보다 잘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머리가 좋아서 그랬던 것 같다.
원래 우재는 웨이브파크 시즌이 끝나고 퇴사하면 소방관 시험을 준비하려고 했다. 그런데 서핑이 너무 재밌어서 배운 김에 좀 더 시간을 들여보기로 마음을 바꿨다. 서핑을 그만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아서다. 우재는 12월에 강원도 양양 근처에 숙소를 마련해서 일자리를 구해 돈을 조금 벌면서 서핑을 하기로 한다. 12월부터 3월까지 겨울 서핑을 하고, 4월에 파크가 개장하면 다시 입사해 그동안 훅 늘어난 실력을 뽐내는 계획이다. 그런 뒤에는? 그런 뒤에 뭘 할지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뒤에? 라는 질문에 생각이 이를 때마다 우재는 조금 움츠러든다. 애인은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이고 똑똑하고 아름답다. 우재는 그녀가 애인인 것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위축되는 마음 때문에 애인에게 예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나는 참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나는 참 멋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