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질을 받으면 유죄, 재판을 안 받으면 무죄

죄는 있거나 없다. 조금 있어도 있고, 있지 않으면 없다.

by 서커스

경찰 기자를 하면서 경계하려는 것 중 하나는 경찰서에 고발장이 접수됐다는 사실 하나로 고발된 사람에게 이미 죄가 있다고 단정하는 태도다. 고발장은 일종의 주장일 뿐이고, 진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수사 기관에서 양측을 불러 이야기를 듣고 각종 진술과 정황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사나 수사로도 사실 충분하지는 않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와 가해자(라고 지목된 사람)의 의견이 엇갈릴 때는 이런 일을 직업으로 삼아서 판단해주는 판사가 재판에서 죄의 유무를 가린다.

재판에서 유죄라는 선고를 받기 전까지는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유죄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보통은 '아무 일도 없는데 경찰서에, 검찰청에 불려 갔겠느냐'면서 이미 어느 정도는 죄가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래서 기사를 쓸 때는 더더욱 그런 편향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을 한다. 물론 뭘 훔치다가 현장에서 적발된 경우나 음주운전 단속에서 적발된 경우처럼 직관적으로 죄의 여부를 알 수 있는 경우는 예외다.

죄에 대한 판단을 판사에게 넘기다 보니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마치 죄가 없는 것처럼 착각하는 오류의 가능성도 있다. 그걸 모르다가 이제야 깨달았다. 고소장은 하나의 주장일 뿐이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죽어 수사기관이 수사를 할 수 없으니 고소장을 어떤 판단의 근거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법기관이야 억울한 범죄자를 만들면 안 된다는 보수적인 원칙으로 사건을 바라보지만, 일반적인 개인들까지 이 원칙을 따를 이유는 없는데.

물론 여전히 수사를 받지 않은 사건의 고발장은 피해자의 주장일 뿐이므로 이것 자체로 전 시장은 유죄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죽음을 선택한 반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보통 죽음 앞에서는 숙연해지곤 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 자체에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은 그 때문인 것 같다.

경찰과 검찰에서 수사할 대상이 사라졌다고 해서 피해자의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때 우리는 어디에 가서 상대의 죄를 물어야 하는가. 각종 언론들에서 어지러운 견해들을 쏟아내면서 '여론'의 재판을 받도록 하는 것만이 능사인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 번 고발장이 접수돼 범죄자로 낙인이 찍히고,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나 검찰청을 찾는 것 자체로 수치심을 느껴야 하고, 일부 유명인사들은 몰려드는 취재진의 플래시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 계속되어도 괜찮은가.

그동안 유지해 온 시스템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는 경우 세 가지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기존의 시스템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의논해 만들어내는 것이고, 둘째는 기존의 시스템을 보수해 예외를 허용하는 것이고, 셋째는 이번 문제는 그냥 넘기고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하는 것이다. 세 가지 선택지 중 세 번째 것은 무책임하고 부당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이 세 번째 선택지가 가장 자주 선택되는 것 같다.

이렇게 큰일이 생겼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갈라져 다투는 갈등이 터져 나왔으니 드디어 길고 긴 의논을 시작할 때다. 이번 문제는 그냥 넘기고, 다른 일로 묻힐 때까지 기다리지는 말아야 한다.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어떻게 바꿔볼지, 수사할 대상도 없지만 보호할 대상도 사라졌으므로 '공소권 없음'으로 끝난 사안들을 전담해서 수사하는 기관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지, 아니면 이번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경찰에서 성추행 사건을 조사하기로 해볼지. 그리고 앞으로는 증거 없이 고발장 접수만으로는 기사를 쓰지 말기로 협의를 한다거나 그런 기사는 가려서 읽기로 하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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