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 울프의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를 읽고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것이 내 본능인 줄 알았다. 화장품 매장에 가서 색색의 화장품이 진열된 것을 보면 행복해지고, 이것들을 내 화장대에 들여놓으면 아름다움이 내 것이 될 것 같아 뿌듯해졌다.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면 허리도 좀 펴지는 것 같았고 힘이 났다.
아름다움의 힘은 반대로 립스틱을 바르지 않고 아이라인을 그리지 않고 외출을 하면 왠지 떳떳하지 않은 기분이 들게 했다. 잠들기 전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른 뒤 집 거울로 맨얼굴을 보는 것은 괜찮지만, 회사 화장실 거울로 맨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왠지 예의를 덜 갖추는 일처럼 느껴졌다. 뭔가를 더하지 않았을 뿐 덜한 것은 아닌데, 아름다움이 본능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시간이 나로 하여금 자신을 부족하고 모자란다고 느끼게 한 것이다. 무언가가 내 삶에 무게를 지우고 있었고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비싼 돈 주고 산 하이힐을 신고 나가면 어깨가 펴지고 기분이 좋고 당당해지는 기분도 들지만, 이내 발이 아파서 짜증이 나고 몸이 지친다. 재밌고 영감을 주는 대화도 마음에 닿지 않는다. 앉아서 쉬고 싶고 얼른 집에 가고 싶어 진다. 그래도 뾰족한 구두를 보면 사고 싶어 진다. 하이힐을 신는 것이 섹시하거나 아름다운 일로 여겨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학부 때 들은 한 심리학 교양수업에서는 일반적으로 균형이 잡힌 얼굴과 몸이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지고, 어린아이들의 시선을 분석해 보면 균형이 잡힌 얼굴을 좀 더 오래 쳐다본다고 했다. 그래서 미추에 대해 교육받기 전부터 일반적인 미적 기준은 본능적으로 타고나는 거라고 했다. 균형 있는 외모가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그것이 대체로 건강한 신체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인 것 같다.
그러나 아름다움에 대해 이것 이상으로 구체적인 기준들은 본능이라기보단 강요된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사슴같이 큰 눈, 무쌍의 작은 눈, 하얀 피부, 큰 가슴, 날씬한 몸, '꿀벅지', 올라붙은 엉덩이, 잘록한 허리 같은 것들. 이런 기준들이 여성들을 지치게 한다. 교정하거나 보정하지 않은 상태의 자기 모습을 싫어하게 만들고 다른 여성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만들고 노력하게 만들고 돈을 쓰게 만든다. 이런 기준들은 시대에 따라 변하니 본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 남성보다 여성에게 훨씬 강한 압력을 준다는 점에서 더욱더 자연스럽지 않다.
셰도우와 아이라이너를 뺐고, 파운데이션을 버렸으며 선크림을 고를 때 더 이상 미백 기능을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마지막까지도 영 버리지 못하던 립스틱도 코로나 19로 마스크가 일상화되면서 슬쩍 놓게 됐다. 커피를 마셔도 컵에 립스틱 자국이 남지 않고, 일하다 확 열이 받을 땐 간단히 세수를 할 수도 있다. 이게 뭐라고 다 버리는 데 9개월이나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