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어린시절

by 서커스

어릴 때 찍은 사진을 보면서 생각해봤다. 내가 이 아이의 엄마였다면 이 해맑은 아이를 어떻게 키워냈을까. 달라는 대로 초콜릿과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마구 사줬을까.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고르는 대로 장난감을 사 주고, 씻기 싫어하면 안 씻기고 자기 싫어하면 밤새 놀게 내버려 뒀을까. 술이나 커피처럼 애들이 먹으면 안 좋은 것들도 한 번씩 먹어보게 해 줬을까. 폭력적인 버릇이 있는 동네 친구와 놀다가 여기저기를 다쳐 와도 친구는 가리는 게 아니라며 마음대로 어울리게 두었을까.


내가 어린 나의 엄마였다면, 가능한 대로 유기농 재료를 사서 따뜻한 밥을 해 먹이고, 과자나 사탕처럼 밥맛을 떨구고 건강을 해치는 것들은 저리 치웠을 것이다. 당장은 싫어해도 결국 이 아이를 건강하고 기분 좋게 만드는 일이므로 제때에 씻기고 재웠으리라. 차별적이고 오만한 부모여서가 아니라, 내 아이의 몸과 마음을 다치게 하는 친구들과는 거리를 두게 했으리라.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하도록 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하지 말라고 해야 했으리라. 그래서 내 아이가 엄마를 흘겨보고 원망하고 혹은 울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이게 순리라는 듯 안아줬을 것이다.


직장을 가진 어른이 된 뒤로 나는 스스로를 건사하며 살고 있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밥 먹고 노는 일에 돈을 쓴다. 가끔 달라는 대로 초콜릿과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마구 주기도 하고, 기분이 안 좋을 땐 습관적으로 인터넷 쇼핑을 하며 씻기 싫을 땐 안 씻기도 한다. 자기 싫을 땐 밤새 놀기도 하고, 토할 만큼 술을 먹는 날도 있다. 나를 괴롭히는 애인과 헤어지지 못해 괴로워도 이게 사랑인데 뭐 하면서 관계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둘 때도 있다. 많은 시간을 일을 하면서 보내니까, 나는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스스로 어떻게든 풀어줘야 한다며 이 모든 것들을 정당화한다.


서른을 앞둔 딸이 여전히 아이처럼 보이는 엄마는 이걸 보고 불편할 게 당연하겠다. 내 딸을 나는 그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다 자란 줄 아는 딸이 스스로를 방치하는 걸 보면 아깝고 안타까울 마음이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한 마디 하면 간섭이라 생각해 기분 나쁜 티를 내는 딸 앞에서 몇 번을 참고 참아 어제는 몇 시에 잤는지, 요새는 누구를 만나고 있는 건지, 제대로 된 밥을 먹는지 물었으리라. 예순을 바라보는 엄마에게 내가 아직도 육아의 짐을 지우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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