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에 읽은 책들
이번 명절엔 책을 양껏 읽을 수 있었다. 평소에도 얼마든지 읽을 수야 있지만 직장인이지 않느냐는 변명과 핑계를 이리저리 늘어놓으며 양손으로 눈을 가리기로 한다. 좀스럽게 야금야금 읽던 책들이 속도를 냈고, 완독한 책도 꽤 되었던 명절이었다.
1. 문장수집생활/이유미
"이 책 괜찮습니다!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29cm 카피라이터의 카피 잘 쓰는 노하우가 담긴 책. 그녀가 카피를 잘 쓰는 비법은 관찰과 응용에 있었다. 소설책에서 모은 문장들을 카피에 응용해 내어 감각적인 문구를 만들어 낸다. 실제 소설과 수필에는 꽤 예쁘고 곱고 가슴에 꽂히는 문장들이 많다. 소설의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문장에서 오는 타격감을 꽤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녀가 모아놓은 괜찮은 문장에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공감되는 부분도 많아서 작가와 만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카피라이터인 그녀만큼 문장을 변환시켜 더 근사하게 포장할 재간은 없지만, 멋드러진 문장을 수집하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더불어 으스대지 않으며 자신의 노하우를 솔직 담백하게 펼쳐 내는 그녀의 글쓰기도 맘에 든다.
이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을 발견하고 그것을 모티브 삼아 내 감각을 더해 나답게 표현하는 기회를 자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꽤 재밌게 읽을만한 책인 것 같다.
2. 나는 말하듯이 쓴다/강원국
"글쓰기의 문턱을 낮춰주는 작가의 글쓰기 노하우가 담겼다!"
대통령 연설문을 10여년 써온 경력을 자랑하는 작가. 청와대라는 곳이 일터요, 대통령 옆에서 그들의 말을 국민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고 하니 신뢰도가 급상승한다. 이 책은 말하기와 글쓰기에 대한 그의 노하우와 생각이 솔직하게 담겨 있는 책이다. 물론 소설만큼 재미나는 스토리는 아니다 보니 속도가 쭉쭉 나가진 않았지만, 밑줄도 그어가며 그의 말에 귀 기울여 노력했다. 그래서 생각보다는 많이 읽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글을 잘 쓰는, 꽤 폼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글쓰기 책역시 솔깃하는 제목의 책이 있으면 한 번은 훑어 보고야 만다. 물론 읽는다고 글을 잘 쓸리 만무하지만, 글깨나 써본 사람들의 노하우는 귀 기울일 만 하다. 광범위한 측면에서 글쓰기의 문턱을 낮춰주는 책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몰랐던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짚으므로써 명료하게 글쓰기의 진리를 상기할 수도 있고 말이다.
3. 글의 품격/이기주
"작가가 글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이런 장면이 그려진다.
옷을 잘 차려입고 값비싼 보자기에 진귀한 보석을 담아 포장하는 모습."
어쩌다 보니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을 우수수 읽게 되었다. 이기주 작가는 말과 글에 상당히 진심인 사람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편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의 메세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한 마음이 참으로 느껴진다. 한 문장 한 문장 딱 알맞게 배치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꾹꾹 눌러쓴 예쁜 글씨처럼 정성스럽다.
4. 주린이가 알고 싶은 최다 질문 77/염승환
"구성과 문장 모두 주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쓴 책! 그러나 주린이를 벗어나는 건 개인의 노력!"
주식을 모르면서 주식 투자하는 사람, 마이너스 수익률을 야속하게 바라보는 사람. 나를 지칭하는 수식어. 그래서 주식의 기초라도 제대로 알자는 마음으로 읽어보기로 했다. 워낙에 베스트셀러였기도 해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어 나갔다. 최대한 쉽게 설명하자는 취지로 주식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77개의 질문과 답으로 구성된 책.
큰 어려움 없이 읽어 나갔으나, 읽고 나면 머리가 새하얘져서 주요 용어는 정리할 생각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나지만, 돈 버는 일엔 어찌 이리 욕구가 높지 않은지 조금 답답해 하며, 그래도 꼭 배워야 할 일임은 알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손가락만 빨고 살 순 없지 않은가.
5. 2021년 제 12회 젊은 작가상 수상집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은 젊고, 모두 여성이었고, 현재 진행형의 문제 의식이 담겨 있다."
최근 젊은 소설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비슷한 해시테그가 보인다.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거나 타성에 젖어있지 않고 문제 제기하기에 용감한 특성. 나는 젊은 축에 속하지만, 사회적 이슈에 굉장히 둔감한 편이다. 판세를 뒤엎어야 한다는 급진보다는 오히려 보수에 가까운 건 아닐까 그런 느낌. 이 지점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주저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뻔해 보이는 것에도 문제를 제기할 줄 알아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세상엔 여러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니 좌절하진 않으려 한다.
6. 번외_7일, 168시간 /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 드립니다
휘리릭 띄엄띄엄 읽은 책들. 생각보다 나의 취향이 아닌 책이었다. '7일, 168시간'은 시간 관리에 관한 책이고,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 드립니다'는 집안 정리에 관한 책이다. 시간 관리법과 정리법을 배우려는 목적으로 읽은 책인데 기대한 바와 조금 다른 책이어서 읽다가 접어두었다.
세상엔 많은 책이 있고 나와 맞지 않은 책들도 있다. 맞지 않다기 보다는 원했던 바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억지로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읽다가 포기한 책이더라도 계속 문을 두드릴 만한 책도 있다. 나에게 그런 책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장미의 이름'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양한 거울에 나를 비추는 일인 것 같다. 다른 이들이 쓴 글에서, 다양한 이야깃거리에서 나를 보는 행위인 것. 그래서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다기보다 나를 보는 일이기에 약간의 나르시즘이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연휴를 지나 지금도 꽤 상당한 책들이 방안에 켜켜히 쌓여있다.
읽는 즐거움에 감사함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