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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하 Jan 22. 2022

산문집의 매력


최근에 읽은 두 권의 산문집

김혼비의 ‘다정소감’

박완서의 ‘모래알 만한 진실이라도’



시인 박연준의 산문집을 좋아한다. 시인답게 말들이 섬세하고 내밀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리듬감이 느껴지며 여울처럼 부드러운 곡선의 문장. 세상의 일들과 감정을 살아 있는 문장으로 풀어내는 재주.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에 반해서 ‘모월모일’까지 읽었다. 두 권의 책은 여전히 내 곁에 있다. 읽은 것에 만족했다면 진즉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날아가 새 주인을 만났을 테지만, 좋아하니까 아직 내가 주인이다. 언젠가 딱 알맞는 리뷰를 올려야지 올려야지 하는데 올리지 못한 책이기도 하다.



다시 본론으로 넘어와서, 김혼비의 ‘다정소감’도 문장 한 줄 한 줄이 허투루 쓰임 없이 모두 힘을 실어 만들어 낸 것 같았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출근할 때 대충 나가는 날 없이 정성들이듯 모든 문장이 월화수목금토일 곱게 차려 입은 것이다. 심지어 토일에도.






‘아무튼, 술’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쓴 작가로,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는 작가인 것 같다. 대략 예상해 보건대 술을 좋아하며, 취미나 특기가 축구려니 생각했다. 작가의 책을 읽으니 어느 정도 술은 좋아하는듯 보였고, 축구로 체력 단련을 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이 ‘너도 내 나이가 되면 철봉에 다리 걸치고 거꾸로 매달리기를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곳.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 튼튼해지는 여자 축구단이다. 작가는 축구를 하며 더 잘 싸울 수 있었다고 했다. 체력이 강해지니 나의 권리를 더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힘이 키워졌다랄까. 이 부분에서 나도 많이 감화되었다. 나의 위축됨은 어쩌면 싸움을 제대로 할 만한 몸이 아니었기 때문 아닐까. 여러모로 강해진 나를 만들고 싶어서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이불에 뭉개고 싶은 이 마음을 깨야하는데 말이지?)







박완서의 에세이. 작가가 발표한 수많은 글 중 꼽아 모은 산문집. 산문집의 매력은 뭘까. 나는 산문보다는 소설을 좋아한다. 애정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더라도 그의 산문은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포장된 개인적인 이야기인 것 같아서 말이다.



박완서의 산문을 읽으면서 산문의 매력을 조금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같은 인간으로서의 공감.



희노애락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옹졸함으로 스스로를 미워하기도 하고 자책하는 같은 인간이라는 . 작가는 굉장히 솔직하게 자신을 기록했다. 꾸미고 포장할 만한 여지가 엄청나게 많을 텐데도 그러지 않았다. 그렇기에 작가가 표현한 행복의 순간이  진실되게 느껴진다. 진실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과시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코고는 남편 옆에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에게 어울리고 기분이 좋다고 하는 것도 진심으로 다가온다. 작가랍시고 서재를  갖춘 방에서 글쓰는 것보다 이게 맞다고 하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작가는 감추고 싶을 만한 작은 인간같은 순간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런 면은 독자에게 안도와 공감을 주는 셈이다. 늘 아름답고 따듯하고 부러워할 만한 것만 드러낸다면 그건 일종의 인스타그램 아닌가. 편집된 나. 산문을 읽는 독자들은 인스타그램을 기대하진 않을 것 같다. 그저 솔직하면서도 진실된 글을 만나길 바라겠지.



그런 글을 읽노라면 나만 옹졸한 게 아니구나, 나만 예민하고 까다로운 게 아니구나 위로를 얻게 된다. 성인이 된다는 건 이해와 배려하는 자세를 장착해야 함을 요구받는다. 그런 상황에서 불평을 늘어놓거나 치사하게 구는 모양새는 자꾸 감춘다. 친구나 가족에게 그걸 늘어놓을 수도 없고. 그렇지만 어느 정도는 응석이나 앓는 소리를 하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박완서의 진실된 글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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