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과 가즈오 이시구로
김초엽과 가즈오 이시구로는, SF소설을 쓰는 작가들이다. 이전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나를 보내지마’를 읽었고, 흥미롭게 읽은 터라 그들의 작품을 다시 읽게 된 것. 둘 사이를 비교하는 리뷰는 아니며, 그저 연달아 읽었고 그것에 대한 각각의 정리와 기록을 남겨본다.
지구 끝의 온실/김초엽
인류 멸망의 끝자락, 더스트 폭풍이 불어 닥친다. 돔을 지어 가까스로 생을 유지하는 집단과 그곳에 속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며 안식의 땅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나오미와 아마리 자매는 떠돌이였다. 누군가의 습격을 피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만한 곳을 찾아 다닌다. 그러다 발견한 프림 빌리지. 그곳에서 평생을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지만..
시간이 흘러, 배경은 한국. 아영은 연구원이다. 해월의 이상한 식물에 대한 제보를 듣고, 어린 시절 알게 된 이희수 할머니 박사를 떠올리며 그 일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나오미와 아마리 자매를 만나고, 그 식물이 모스바나임을 알게 된다.
모스바나는 인류를 구한 식물이다. 더스트를 끈적하게 만드는, 일종의 더스트를 흡착하는 기능을 가진 식물로, 인류는 모스바나로 인해 돔을 벗어나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김초엽 작가의 신작인 ‘지구 끝의 온실’은, 장편 SF소설이다. 이전에 읽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그의 단편 모음집이었는데, 이번엔 작가가 하나의 아이디어를 확장시킨 장편이었다.
인류의 재앙엔 원인이 존재한다. 우연히 운석의 충돌로 인한 삶의 초토화가 아니라면, 미래의 재앙은 지금도 그렇듯, 인간이 건드린 것이 눈덩이처럼 부풀어 초래되는 것은 분명하다. (정말 엄청난 운석이 지구를 강타할 수도 있을까. 나사라든가 우주항공을 연구하는 분들이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진 않을지..) 전염병도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도 원인이 있었고, 그로 인해 나쁜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 책의 더스트 폭풍도 연구의 실수로 발생된 결과였던 것 같다.
혼란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기 위해 돔으로 더스트를 차단하고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곳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그들 나름의 비책을 마련하여 삶을 살아간다. 그 생의 터전이 프림빌리지였고, 이곳에는 온실이 있고 그 안엔 기계인 레이첼이 있다. 레이첼이 ‘만든’ 모스바나가 그 다음 인류를 존속케 했는데, 이는 영웅적 심리가 아닌 또 걱정하는 마음도 아닌 순수한 탐구 정신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는 기계에 가까운 인물이니까.
다양한 캐릭터라 등장하는데, 내성이 강한 나오미, 더스트에 취약한 아마라, 그리고 기계 인간인 레이첼 등 미래 시대라면 그려봄직한 인물이 나온다. 그리고 더스트 시대 이후, 인류가 존속이 되었을 때의 인물인 아영과 그가 어렸을 때 만난 이희수 할머니까지. 프림빌리지에서 레이첼을 수리하고 그곳의 리더로서 역할을 했던 지수씨라는 인물이 이희수 할머니였다.
최근에 김초엽 작가의 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이과적 전공에 기반하여 과학과 미래를 통한 상상을 담은 소설에 흥미를 끄는 요소들이 많다. 과거 분단과 독재, 민주화, IMF, 밥벌이의 괴로움, 계층 문제, 실직.. 한국 사회의 문제가 담긴 소설들과 달리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어서 편했다. 물론 이대로의 환경 파괴라면 인류의 끝을 볼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상상과 가정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잠깐이나마 현실을 벗어나게 해준다. 이런저런 것들과 잠시 거리를 두고 저기 저 먼곳으로 잠시 가는 느낌.
클라라와 태양/가즈오 이시구로
AF란, Artificial Friend의 약자로 인공 친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미래에는 나를 잘 아는 인공 로봇같은 친구를 상점에서 살 수 있다. 그리고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살 것인지, ‘향상’할 것인지 선택도 가능하다. 다만, 향상할 경우, 어느 정도의 위험 부담은 필요하다. 말 그대로 뛰어나지지만 죽을 수도 있는 것. 향상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가능하지만, 그럼 꿈을 펼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뛰어난 두뇌를 가져도 향상된 인간들의 리그에 끼기 어려워진다. 제도상으로도, 아마 능력상으로도 그렇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영국 국적을 가진 일본인이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으로 이주하여 자랐으며, 영어로 소설 집필을 하며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다. 나는 그의 소설 ‘나를 보내지마’ 이후 이 책을 만났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기계가 대체할 수 있지만 완전하진 않은 시대가 배경인 이야기다.
‘나를 보내지마’가 클론, 즉 본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복제 인간을 이야기했다면, 이번엔 인간역시 변형되어 능력을 올릴 수 있고, 인공의 친구(AF)가 친구로서 역할 뿐 아니라 혹시 모를 백업의 존재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걸 기반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클라라는 AF다. 상점 쇼윈도에 진열되어 인간의 구매를 기다린다. 그들은 생각과 학습이 가능하여 창 밖으로 보이는 걸 관찰하고 조합하여 추론도 한다. 물론, 구매자의 충실한 친구라는 역할이 그들의 삶(이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다면)인 것이다. 역할이 미진하면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 클라라는 다른 AF보다 좀더 똘똘하다.
조시라는 여자 아이가 클라라를 맘에 들어 했고 ‘너를 데리러 올게’라는 말을 남긴 후 한동안 찾지 않는다. 다른 아이가 클라라를 사고 싶어 했으나, 조시를 생각하며 구매되길 원치 않는다. 주인은 클라라에게 실망했다며, 아이들의 말은 믿을 게 못된다는 말을 한다. 다행히 클라라는 다시 찾은 조시의 AF가 된다. 조시는 향상을 한 인물로, 그 대신 몸이 많이 약해졌다. 조시에게는 향상을 하지 않은 친구 릭이 있다. 둘은 앞으로 함께 하자는 굳은 약속을 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같이 이루어지기 힘든 만큼이나 같이 하기 어려운, 속성의 차이가 생겨 버린 것이다. 향상과 향상 안 함의 차이는 그들이 계획을 세우고 반드시 함께 하자는 약속을 바스라뜨린다. 같은 대학을 진학하고자 하나 릭과 같은 사람들의 배정 비율이 굉장히 낮다.
조시에게 샐이라는 언니가 있었고, 향상 이후 몸이 쇠약해져 죽었다. 조시의 엄마는 조시마저 떠날까봐 나름의 계획을 세운다. 불상사가 생겼을 때 클라라를 조시처럼 만들고, 겉은 조시의 형태로 씌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시에게는 초상화를 그린다는 명목으로 어딘가 데리고 가지만, 초상화 작업이 아니라 클라라에게 씌울 조시의 형체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제목이 ‘클라라와 태양’인데, 태양은 기계 시대에 전능한 힘을 갖는다. 막강한 빛 에너지랄까. 클라라는 쇼윈도 창 밖으로 본, 거지 노인과 개가 태양 빛으로 새 생명을 얻은 듯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약해져 가는 조시를 위해 클라라는 태양에게 굉장히 공손하게 소망을 빈다. 그 거지 노인을 살린 것처럼 조시를 살려주기를. 태양을 가로 막는 기계를 망가뜨리겠다고 태양에게 약속하고 그 행동을 실천한다. 굉장히 능동적이고 헌신적인 AF다.
가까운 어쩌면 앞으로의 미래는 여전히 엉거주춤한 형태가 아닐까. 완전 대신하기엔 인간이 가진 캐릭터가 너무 강렬하니까 말이다. 다만, 우습고 놀랍고 잔인하고 선한 여러 복잡 미묘한 면모를 프로그래밍 한다면 완전 대체도 말이 안 되는 건 아닐 것 같다. 그렇지만 인간이기에 저지르는 실수는? 알면서도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아이러니는? 이성과 감성의 혼돈은? 그때는 맞고 나중엔 틀릴 수 있는 경우는? 한 인간과 다른 인간의 그 복잡미묘한 관계는? 로봇이 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을까? 머리가 아파지려 하니 이 정도로 두 번째 SF 소설 리뷰도 마무리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