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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하 Feb 12. 2022

봄을 기다리는 나목

박수근전을 다녀와서



21년 말부터 최근까지 덕수궁 미술관에서는 박수근 전이 진행되고 있다. 꼬꼬마 시절 언니의 학교 숙제로 박수근 전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나의 첫 미술관이었을까 까마득하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어렴풋 박수근의 커다란 그림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림을 기억한다기 보다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겠지.







특유의 거칠고 묵직한 질감으로 아낙네, 아이를 업은 누이 모습을 소박하게 표현한 화가. 밀레 같은 화가가 되고 싶었던 박수근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정규 미술 교육을 받기 어려웠다. 신문이며 잡지에서 서양 화가들의 그림들을 스크랩한 자료들도 전시 되어 있었는데, 미술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강한 열망이 담긴 스크랩북 같았다.



그의 그림은 신기하게도 멀리서 보아야 형체가 뚜렷해진다. 가까이서 보면 울퉁불퉁한 질감으로 선이 명료하게 보이진 않는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 전체 그림을 조망하면 그때서야 나무며, 구부려 앉은 아낙들의 모습, 난쟁이 동생을 업은 누이의 모습이 보인다.  사용도 흰색이나 회색 등의 무채색 톤으로 표현하여 소박한 질그릇 같은 느낌을 준다. 그때  시절 소박한 서민의 삶이 그의 주된 피사체였다. 그들, 그때 서민들의 특성을 두루 뭉뚱그려 표현하자면 소박하고, 뭉툭하고, 둥그렇고, 따스하다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런 특성을 그림에 담아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는 대상만이 서민이 아니라, 그들 자체가 그림이 되는 표현 방식이지 않았을까.



벌써 입춘이 지났다. 어느새 낮의 길이는 조금씩 길어지고, 한낮에는 햇볕의 따듯한 기운이 코로 피부로 느껴진다. 겨울의 나목은 벌거벗은 채 앙상하게 서 있지만, 봄을 기다리기 때문에 기대감을 한껏 갖고 있는 대상이 아닐까. 박수근 전의 전시관은 1층의 1, 2관과 2층의 3, 4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2관은 어두운 가운데 박수근의 대표작들이 전시되었고, 4층으로 가면 밝아진다. 마치 봄이 오는 것처럼 밝아진다.




나목도, 우리의 삶도 순서에 따라 당연히 찾아오는 봄처럼, 꽃망울처럼, 꽃 피울 봄을 준비하는 것처럼 묵묵함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겨울의 나목이 추위에 온몸의 이파리를 떨구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고, 최선을 다해 봄을 준비한다. 봄이 올 것이라는 것을 당연히 아는 사람처럼. 우리는 봄이 오리라는 기대를 점점 덜어내며 지금의 겨울에 이리저리 치이며 살지 않은지. 봄을 기다리는 나목은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봄은 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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