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서평집'을 읽고
서평집인데 서평집같지 않다. 여러 책들에 대해 말하는 데 이슬아 작가가 흘러 넘친다. 그런 서평집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헤엄 출판사의 빈티지한 표지 사진이 참 좋다. 어릴 적 두꺼운 사진 앨범에 있을 것 같은 빛바랜 듯한 질감.
이 책의 제목은 유진목 작가의 ‘식물원’에서 따왔다. 이슬아 작가는 자신의 소중한 ‘하마’에게 말한다. 조금 버겁고 힘들더라도 그 시간을 다시 태어나기 위한 기다림이라고 말해준다. 어쩌면 얼마든지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누군가 다시 태어나는 누군가를 기다려준다면, 그걸 긍정해 준다면.
이슬아 작가의 글은 의외로 담백하고 구체적이며 정확하다. 그녀가 고운말을 잘 짜는 작가임에도 산문 기반의 작가라 그런 건지, 그녀 자체의 단단한 에너지 때문인지 안정적인 경쾌함이 느껴진다. 박연준 산문집을 읽고 그녀의 글을 보니 더 그랬을까. (박연준은 시인이고, 산문 조차도 너무 아름다운 언어여서 감각이 몽글몽글 타오른다. 촉감이 느껴지고 시각이 발동한다.) 물론 박연준도 이슬아도 다 좋았다는 말이다.
어쩌면 책 읽기는 나의 테두리를 극복해보려는 노력 같다. 내 신체와 역사와 기억과 쩨쩨한 자아로 세워진 그 테두리는 부단히 애써야 겨우 조금 넓어진다. 내가 나라는 걸 까먹을 만큼 커다란 사건 앞에서는 허물어지거나 낮아지거나 순간적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압도적인 슬픔, 압도적인 아름다움, 압도적인 탁월함 등으로 나 같은 건 잠시 안중에 없어지는 것이다. 나를 채우는 독서 말고 나를 비우는 독서도 있다. 어떤 책들은 과거의 나를 점점 줄여나가도록 돕는다. 새로운 나 혹은 새로운 존재가 되자고 등을 쓸어준다. 그래봐야 나는 영영 나고 겨우 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나 이상의 무언가가 되고 싶어서, 잠깐이라도 다른 존재의 눈을 빌려 세계를 보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것일지도 모른다. - 77~78p.
나는 영영 나고, 겨우 나다. 나라는 존재의 경중이 동시에 들어가 있는 문장. 나는 소박하면서도 귀한 존재라는 느낌이다. 나 이상의 무언가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본질적인 내가, 다시 태어나도 여전히 나일 나. 그런 내가 서사를 만들기 위해 책을 읽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