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하 Mar 02. 2022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이슬아 서평집'을 읽고



서평집인데 서평집같지 않다. 여러 책들에 대해 말하는 데 이슬아 작가가 흘러 넘친다. 그런 서평집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이슬아, 헤엄출판사





헤엄 출판사의 빈티지한 표지 사진이 참 좋다. 어릴 적 두꺼운 사진 앨범에 있을 것 같은 빛바랜 듯한 질감.






이 책의 제목은 유진목 작가의 ‘식물원’에서 따왔다. 이슬아 작가는 자신의 소중한 ‘하마’에게 말한다. 조금 버겁고 힘들더라도 그 시간을 다시 태어나기 위한 기다림이라고 말해준다. 어쩌면 얼마든지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누군가 다시 태어나는 누군가를 기다려준다면, 그걸 긍정해 준다면.




이슬아 작가의 글은 의외로 담백하고 구체적이며 정확하다. 그녀가 고운말을  짜는 작가임에도 산문 기반의 작가라 그런 건지, 그녀 자체의 단단한 에너지 때문인지 안정적인 경쾌함이 느껴진다. 박연준 산문집을 읽고 그녀의 글을 보니  그랬을까. (박연준은 시인이고, 산문 조차도 너무 아름다운 언어여서 감각이 몽글몽글 타오른다. 촉감이 느껴지고 시각이 발동한다.) 물론 박연준도 이슬아도  좋았다는 말이다.





어쩌면 책 읽기는 나의 테두리를 극복해보려는 노력 같다. 내 신체와 역사와 기억과 쩨쩨한 자아로 세워진 그 테두리는 부단히 애써야 겨우 조금 넓어진다. 내가 나라는 걸 까먹을 만큼 커다란 사건 앞에서는 허물어지거나 낮아지거나 순간적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압도적인 슬픔, 압도적인 아름다움, 압도적인 탁월함 등으로 나 같은 건 잠시 안중에 없어지는 것이다. 나를 채우는 독서 말고 나를 비우는 독서도 있다. 어떤 책들은 과거의 나를 점점 줄여나가도록 돕는다. 새로운 나 혹은 새로운 존재가 되자고 등을 쓸어준다. 그래봐야 나는 영영 나고 겨우 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나 이상의 무언가가 되고 싶어서, 잠깐이라도 다른 존재의 눈을 빌려 세계를 보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것일지도 모른다. - 77~78p.






나는 영영 나고, 겨우 나다. 나라는 존재의 경중이 동시에 들어가 있는 문장. 나는 소박하면서도 귀한 존재라는 느낌이다. 나 이상의 무언가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본질적인 내가, 다시 태어나도 여전히 나일 나. 그런 내가 서사를 만들기 위해 책을 읽는 건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