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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하 Mar 15. 2022

독서 모임의 흥미로운 지점


책을 읽는 일이란 본래 조용하고 고독하기 그지 없는 시공간을 유영하는 일이다. 활자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나와 책 둘만이 있어야 한다.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그렇기에 책 읽는 여인들이 그려진 그림들은 굉장히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질 때가 있다. 책과 나의 유착 관계가 확장되는 시점이다. 넓어지고 어쩌면 더 깊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실은, 나는 책을 읽고 리뷰를 브런치나 블로그에 적는 일로서 내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것을 좋아했다. 일방향적인 말하기로 적당한 만족감을 느끼곤 했다.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왠지 모르게 쑥스럽고 급기야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책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세상 속에서 살고 싶진 않았다. 책은 어디까지나 주인공인 나를 위한 것으로서 존재했으면 한다. 나의 굉장한 선입견 중 하나가 독서 모임은 책을 엄청나게 떠받드는 집단일 거라는 생각도, 독서 모임을 등한시 한 하나의 이유기도 했다. 그리고 활달한 인간관계를 맺는 걸 선호하지 않는 나의 성향 상 '모임'은 낯설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다 조금 유연해진 마음으로 갈 만한 독서 모임이 없을까 찾아보았다. 책을 매개로 한 낯선 곳에 갈 마음이 조금씩 생겼다.


그런데 독서 모임을 찾는 게 의외로 어려웠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겠지만, 모임으로서 만남을 갖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아님 내가 못 찾는 것인지, 갈망은 있었지만 좀처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독서 모임을 알게 되었다. 조던 피터슨의 '질서 너머'를 12가지 법칙을 세 개씩 나눠 주마다 진행하고 있었다. 12개의 법칙이니, 4주에 걸쳐 한 권의 책을 쪼개 보며 생각을 나누는 독서 모임이었다. 물론, 갈 수 있다고 다 참여할 순 없었고, 구글 폼으로 신청서를 작성하여 선정되면 참여할 수 있다. 그 양식에는 세 개의 법칙에 대한 자신의 감상평을 짧게 적는 란도 있었다. 공지문을 보니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 같았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 참여해 달라는 말이 적혀 있었고, 감상평도 검증 위주의 차원으로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리하여 꼭 참여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감상평을 적었고, 시간과 장소가 담긴 메일이 왔다.





그전에도 독서 모임에 간 적은 있었는데, 오랜만에 낯선 사람들을 만나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고 하니 조금 떨렸고 걱정도 됐다. 내가 과연 책을 잘 이해한 것일까 싶어서 말이다. 조던 피터슨의 '질서 너머'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기 때문에, 중간 중간 인용된 서경이나 시 구절을 딱 알맞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다녀온 후기를 짧막하게 말하자면,


1) 굉장히 어린 친구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젊은이들의 갓생살기의 일환인 것인지(조던 피터슨 책 자체가 자기계발서라고 보긴 어렵지만, 가열차게 인생을 살라는 강렬한 말들이 많기 때문이다), 단지 친목의 확장 개념인지 모르겠으나,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이곳에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어 가는 것 같았다. 굉장히 보기 좋은 모습이다.


2)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인상 깊게 느끼는 지점이 다르다. 더불어 그 지점을 받아들이는 생각도 저마다 다르다. 그것을 논쟁이 아닌 이해의 차원에서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꽤 흥미로웠다.


3) 다양한 사람들을 접할 수 있다. 퇴사를 하고 자신의 사업 아이템을 준비하는 사람, 편입을 준비하는 사람, 대학은 휴학하고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 대학교에서 조리사 일을 하는 사람 등등. 어떤 사람은 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현재 한국 대학으로 편입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말도 외국말도 둘다 잘 하지 못한다고 말했는데, 그런 이력이 신기한 느낌이긴 했지만, 무엇보다 그 사람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질문이 꽤나 많았다는 점이었다.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지는 모습에 '과연, 이 사람은 뭘까? 질문의 요점은 그리 없는 것 같은데.. 다른 주제로 넘어가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라는 생각에 급격히 집중력이 흐려졌다. 일견 어떻게 저렇게 줄줄이 질문을 할 수 있지라는 신기함과 함께 유익하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4) 오랜만에 하고 싶은 말을 많이 했다는 점이 좋았다. 보통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책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그저 사는 이야기, 코로나, 건강, 돈... 나이가 드니 그간의 추억을 리마인드 하면서도 평범한 보통의 주제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결국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건강을 챙기냐 하는 실제적인 말들로, 즐거우면서도 답답함도 함께 공유되는 시간이 된다. 그런데 독서 모임은 책과 함께 나의 생각을 정직하게 마음껏 드러낼 수 있어서 좋았다. 한 사람 당 이야기 할 충분한 시간도 주어졌다. 힘을 빡 내게 해주는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힘을 내는 일들을 이야기 해볼 수 있으니 괜찮은 시간이었다.

 



독서 모임이 있는 곳이 있다면 다시 또 참여해보고 싶었다. 독서에 대한 나의 관심은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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