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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하 Nov 13. 2020

지적인 행위로서의 걷기

[책] 지적으로 운동하는 법/데이먼 영



걷기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행위다. 물, 음식, 햇볕 등을 동력원으로 뼈와 살이 움직인다. 머리에서 가고자 하는 방향을 인식하면 몸이 이를 따라온다는 게 새삼 놀랍고 신기하다. 걷기는 내가 내 몸을 제어하는 가장 쉬운 행위이다. 춤, 곡예, 체조, 멀리뛰기, 장대 높이뛰기 등 몸을 써서 하는 것 중에 한 발 두 발 내딛는 것만 하면 되니 비교적 쉬운 움직임인 것.



낯선 이와의 만남에서 대화의 포문을 여는 것은 보통 날씨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로 두 마디 정도 오가면 끝나는 것이 또 날씨 얘기다. 그러면 다음에 등장하는 주제가 취미다. "보통 쉬는 날은 뭐해요?" "요새 뭐 하는 거 있어요?" 이런 류의 질문에 나는 어버버한다. "쉬는 날에는 그야말로 쉬어요." 취미와 특기가 색다르지 않은 나와 같은 사람들은 적절한 대답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음.. 걷는 걸 좋아해요. 시간이 나면 산책을 하는 편이에요.




물론 러너나 워커라는 칭호를 붙일 정도는 전혀 아니라서, 취미라고 하기엔 너무나 산책에 가깝지만, 요즈음에는 소화가 안 되거나 마음이 답답하면 걷기를 자처하는 편이다. 하체가 앞뒤 앞뒤로 흔들리면서 바람을 가르며 몸을 움직인다는 자체가 잘 하고 있다는 느낌도 주고, 그렇게 묵은 생각들도 흘려 보내곤 한다. 몸과 마음은 또렷해지고 어쩌면 더 슬기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줄 수도 있다.








'지적으로 운동하는 법(데이먼 영)'이라는 책이 있다. 걷기, 달리기, 테니스, 복싱, 수영, 요가 등 다양한 운동이 우리의 정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것이 어떻게 유익한 상태를 만들어 줄 수 있는지 다양한 문헌을 인용해 설득력을 높인다.



 

알랭드 보통의 인생학교 '지적으로 운동하는 법'




운동을 통해 우리는 '공상, 자부심, 희생, 아름다움, 겸손, 아픔, 일관성, 숭고함, 일체감'이라는 일련의 고상한 정신 상태를 고양하게 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운동을 통해 우리는 좀 더 높은 가치를 탐닉할 수 있다는 아주 멋진 상태를 제안한다.



걷기는 어떤 정신 상태와 연결이 될까? 바로, 공상이다.


다음 문장은 '지적으로 운동하는 법'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다윈은 걷기를 통한 이완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던 것 같다. 이러한 과정이 위대한 성과로 연결된 것이다. 느슨함과 한적함은 습득한 아이디어를 소화하게 해준다.


걷기는 자연스런 행위에 가깝다. 애써 뭔가 만들지않아도 되는 느슨한 상태. 걷다 보면 경직된 사고가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지는 것 아닌지. 약간, why not?의 태도가 되는 거 아닐까.



다윈에게 걷기는 생각에 잠겨서 하는 운동, 일종의 움직이는 명상이었다. 걷기를 통해 그의 과학적 성과가 풍성해지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호기심도 충족됐다.

다윈이 표현했던 산책할 때의 '한가로운 마음'은 창의적인 모습을 연상시킨다. 신경과학자들은 운동이 혁신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해왔다. 운동을 하면 더 열심히 연구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적 능력이 긴장을 풀고 그동안 받아들인 많은 사실과 논거들을 소화시킬 여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것을 '전두엽의 순간적인 기능 저하'라고 설명한다. 일반적인 개념과 규칙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 전전두피질은 기능이 약해지는 반면, 뇌에서 운동과 감각을 담당하는 부위는 활성화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상태를 '걸으면서 즐기는 공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발을 구르고 팔을 위아래로 흔드느라 분주한 사이 지적 능력을 둘러싼 벽이 허물어지면서 그 전까지 갈라져 있던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이 자유롭게 어우러진다.



달리기는 어떨까? 우리 삶에 일종의 질서를 부여해준다고 말한다. 바로, 일관성!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라톤을 즐겨하는 작가다. 마감과 완성을 이뤄야 하는 작가에게 규칙적인 어떤 행위는 작업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그것이 달리기였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체계는 조화로와야 안정된 상태로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낱낱이 어지럽혀 지거나 '맥락을 놓치'면 우리는 그야말로 멘탈이 탈탈 털리며 그대로 주저앉고 싶다. 그럴 때 규칙적인 달리기 행위는 우리 인생 전체에 일관성이라는 힘을 부여해줄 수 있다. 단순히 달리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규칙적으로 달리는 행위 특히 마라톤은 일희일비하지 않는 평정심을 유지하게 해준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들이 서로 맞물려 하나의 전체를 이루어야 한다고 매킨타이어는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갈라지고 분리되고 갈등을 일으킨다. 즉, '맥락을 놓쳐'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는 성실과 지조의 미덕이 절실하다. 성실함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키워지며, 지조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발달한다. 두 성품 모두 우리의 여러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하나로 통합하려는 성향, 즉 일관성이라는 미덕을 갖고 있다.

매킨타이어는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 불평한다면, 그런 사람은 대개 (…)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스스로 이해가 안 되고 핵심이 빠져 있다고 불평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일관성의 여러 미덕이 삶에 목표를 부여하지는 못하지만, 목표에 맞게 삶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

작가는 길 위를 달리며 얻은 것들을 종이 위에 옮긴다. 무라카미는 "글쓰기에 관해 내가 아는 지식은 대부분 매일 달리기를 하면서 배운 것들이다"라며 "모두 현실적이고 신체와 관련된 교훈들이다"라고 썼다. 조깅은 매킨타이어가 말한 일관된 삶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그런 삶을 지속하게 해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만약 삶이 전혀 복잡하지 않고 갈등도 없어서 좋은 의도만 갖고 산다면 일관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해 여러 역할이 우선순위를 놓고 갈팡질팡한다. 다시 말해 맥락을 놓치기 쉽다. 따라서 소모적이고 고통이 따르는 운동에 꾸준히 매진한다는 것은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온전함을 추구하는 습관을 기른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은가. 인생은 의외의 국면에서 풀리기도 한다. 내 마음이 어지러울 때, 내 몸을 움직여 질서를 잡으면 내 마음도 정리가 될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이라는 것은 내 마음의 안정감을 부여하고 두뇌 회전을 활발하게 하여 더 나은 발걸음을 디디게 한다.


단순히 미적인 측면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나를 위해서 운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머리와 마음을 채워준다니, 운동은 넘나 놀라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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