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와 글쓰기에 대하여
다른 온라인 공간에서 소소하게 일기 혹은 후기 같은 글들을 업로드 해왔었다. 그 공간은, 그리고 글쓰기는 스스로를 으쓱해지게 했다. "봐봐, 나 내 생각을 이렇게 적어봤어! 어때?" 스스로 위축될 때 내 공간에서 옅게 숨을 쉬곤 했다. 가을 한낮의 공원 벤치같이 안온하다.
(소수지만) 지인 몇 명에게 그곳이 오픈됐고, 그 이후 아는 사람에게 내 글이 읽혀진다는 생각이 드니 괜하게 의식이 되었다. 글쓰기는 과정이자 결과인데, 쓰는 중에도 쓰고 난 후에도 마구 신이나거나 매우 만족스럽거나 하지 않았다. 내 만족으로 시작한 글이었지만, (물론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기를 기대하는 것도 당연한 심리지만) 쏟아내지 못하고 막히는 구간이 생겼다. 오글거리는 말도, 센치해진 기분도 표현하기 어색했다.
그러다 브런치를 만났다. 이곳은 내가 필명으로 존재하는, 마치 독일 함부르크에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서 첫 시작을 하는듯한 자유로움이 있었다. 나는 함부르크에 왔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곳을 알리지 않을 생각이다. 좀더 나다운 모습을 드러내며 유영하고 싶다. 오히려 아는 사람들 앞에서는 짐짓 괜찮은 척을 하게 돼서, 나다움이 옅어진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한없이 우울해질 때도 있고 자신의 찌질함과 옹졸함을 목도하고 몸서리 치는 순간, 그러다가 작은 거에 우쭐해지면서 자신감 만땅이 되기도 하는 등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고 싶은 때가 참 많다. 함부르크에서의 나는 이제 내 멋대로 나를 풀어 놓고 싶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매우 흠모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해!'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수려한 낱말과 매끈한 문장에 황홀해지고, 뒤에 벌어질 일들을 궁금하게 하는 작가의 똑똑한 두뇌에 감탄한다. 글쓰기는 내가 흠모하는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갈망을 작게 작게 실현하는 일이다. 전보다 나아진 글을 볼 때 자기 만족으로 신이난 기분이 든다. 약간 근자감 같은 거랄까. 읽고 쓰는 일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나를 안도시킨다.
내게 글쓰기가 적합했고,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 이유는 다음 네 가지다. (물론 더 있겠지만)
1. 교양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언어를 갖고 놀 줄 아는 사람이기를 원했던 내 욕구 충족
대학교에서 여자들한테 인기 많으려고 노래와 기타를 배우는 풋내기 신입 남학생처럼, 나도 지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책을 읽다 보니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더 읽었지만, 기본적으로 내 욕구의 충족을 위한 것이었다. 쓰기는 작가나 작사가들의 텍스트에서 느껴지는 멋드러짐에 나도 당도하고 싶다는 갈망이다. 좀더 다채로운 어휘를 구사하고, 나만의 문체를 만들어 가고 싶다.
2. 게으른 나를 좀 더 부지런하게 만드는 장치
본래 나는 게으르다. 모험심이 미미하며,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인물인 셈이다. 그런데 글쓰기는 나를 부지런하게 만든다. 글을 쓰려면 사건, 생각, 느낌이 있어야 하며, 좀더 다양하게 있는 편이 좋다. 글에도 재료가 필요한 법이다. 두부와 된장만 들어간 된장찌개 보다는 두부, 호박, 감자, 양파, 된장이 들어간 된장찌개가 씹을 것도 많고 맛도 좋은 이유랄까. 일상적인 일에서 소스를 찾아내 글을 쓸 수도 있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한 글이 생동감 넘치기에,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어디로든 가고 좀 더 생각하고 느끼려고 하는 것이다.
3. 내가 쌓여가는 시간과 공간의 구축(MY HISTORY)
과거의 나를 기억하는 것은 사진, 글 등 다양할 것이다. 인간은 기억하고 기록하는 행위가 본능적인 것 같다. 글을 착실하게 쓰다보면 나의 시간과 공간이 좀더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래서 글이 쌓여가는 것은 내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나의 궤적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4. 외로움을 상쇄하는 행위
나는 마음 맞는 사람과 있을 때는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무리지어 있으면 말이 중구난방 자리를 못 잡아서 아예 입을 다무는 편이라, 소수의 사람들과 긴밀히 관계 맺는 것을 좋아한다. 비교적 외로움에 무디다고 생각하다가도, 갑자기 고독이 물밀듯 차오를 때도 있다. 그러면 내 사람들을 만나서 삶을, 인생을 함께 나누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것도 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글을 쓰는 것은 결과물도 있지만 쓰는 그 과정 자체도 숭고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으면 따듯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