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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하 Nov 14. 2020

심야 김장

가족에 대해서




이번 주 토요일에 김장할 거야.




엄마의 말.

우리집은 엄마가 바빠서 김치를 아는 분께 사서 먹곤 했다. 작은 엄마의 어머니한테서 말이다. 전라도 할머니의 손맛이니 말해 무엇. 맛있는 김치의 공급원이 있었던 우리집은 꽤 오랜 시간 김장의 굴레(!)에 벗어나 있었다. (솜씨 좋은 분이 맛있게 김치를 만들 수 있다면, 굳이 김장이라는 이벤트 안 해도 좋으니까)



회사 동료는 금요일 퇴근 후 여주에 있는 시댁에 간다고 했다. 내일 김장을 하기 위해서. 요새는 김치도 많이 사먹는다고 하지만, 김장하고 수육 삶아 먹는 전통이 있으니 며느리든 사위든 김장 시즌엔 출동하는 것 같다.


"저도 엄마가 이번엔 집에서 김장한대서 토요일에 김장할 거예요. 수고해요!"



집에 도착하니 이미 엄마가 김치소를 만들어 두었고, 절인 배추가 배달되었다. 배추 절이는 일은 김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일이 씻고 소금 치고 뒤집다 보면 진이 빠져 버린다. 요새는 절인 배추를 손쉽게 살 수 있기 때문에 김장을 조금 덜 힘들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절인 배추를 물에 한 번 씻고 물기를 빼준 뒤, 김치소만 묻히면 김치 완성이다.


김장에 대해 엄청 잘 아는 것처럼 적어놔서 대단히 민망하다. 실상 김치소도 어떻게 묻혀야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인데...



이따 밤에 김장할 거야.



다시 엄마의 말.

내일 한다고 하지 않았어? 절인 배추도 도착했고 지금 해야 김치가 맛있게 된다고 해서 정말 밤 11시에 심야 김장이 시작됐다. 종료 시간은 뒷정리까지 해서 새벽 1시.






엄마 아빠는 우리를 키우기 위해 아주 오래 전부터 했던 일을 아직까지 하고 계신다. 회사처럼 나인투식스가 아니라 하루 종일의 노동을, 손자 손녀를 본 할머니 할아버지 나이인 지금까지 변함없이 하고 있으신 거다. '나는 저렇게 힘들게 일하며 살 순 없을 거야'라며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편하게 살 수 있는 미래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을 무겁게 품었었다.


그렇게 엄마 아빠의 일이 모두 끝나고 우리는 심야 김장의 돌입했다. 네 식구 옹기종기 둘러 앉아 엄마가 중간에 칼집낸 절인 배추를 건네주면 김치소를 발라서 김치통에 꾹꾹 눌러 담았다. 엄마를 제외한 나머지 3인은 김장의 잼뱅이들이라 김치소를 바르는 작업을 진행하다 김치소가 배추양에 비해 부족한 것을 보고 어쩐담 어쩐담 상태가 되었다.


"처음부터 김치소를 너무 많이 발랐나봐."


초반 작업했던 김치를 꺼내서 양념을 탈탈 털어 남은 배추에 바르는 일들을 다시 했다. 다들 웃음으로 김치소 부족 사태를 해결하고 적당히 품앗이한 양념으로 김치소를 다 바르고 통에 담았다. 이미 엄마가 많은 부분 준비해놓아 김장은 빠르게 끝났고 뒷정리도 착착 진행했다.



어릴 때부터 일하느라 바빴던 부모님이었기에 뭔가를 함께 하는 일이 많지 않았다. 이번에 김장을 하면서 서로 배려하는 게 느껴졌고, 김치소가 부족한 걸 저마다 내가 처음부터 양념을 많이 넣어서 그런 거라며 부드럽게 말했다. 김치소를 왜 적게 했냐고 탓하거나 왜 김치소를 많이 넣었느냐고 꾸짖는 일 없는 모습에, 나의 가정은 내 생각보다 따듯한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협동한 하나의 일을 잘 끝내기 위해 미루는 일 없이 소쿠리와 대야 씻기, 설거지 하기, 바닥 닦기, 김치통 입구 닦기까지 끝냈다. 


어찌보면 살기 바빠 가족만의 시간으로 채우지 못한 세월 속에서, 김장은, 우리 가족의 소소한 추억이 된 것 같아 반가웠다. 먹어본 김치의 맛도 좋았다. 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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