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뜨지 않은 새벽겨울은 참 어둡다. 생의 활력을 느끼기엔 아직 많은 것들이 잠들어 있다. 나홀로 생산적인 인간인양 의기양양해진다. 그래도 북적대는 지하철에 오면 아침형 인간 코스프레는 소멸. 나도 한낱 이른 출근자의 한 명이 된다.
그냥 노.동.자가 되어 버린다.
여행을 가면 보통은 일찍 숙소를 나선다. (대신 일찍 숙소로 돌아온다. 야경이 애달픈 여행자다.) 새벽공기를 맡으며 즐거운 과다 일과를 소화하겠다는 마음이면 어찌나 서늘하게 청량한지 모른다. 그 쌀쌀한 공기가 온몸을 휘감아 돌며 그 순간만큼은 지상 최고의 행복꾼이 된다. 잠이 모자라도 에너지를 쥐어짤 수 있을 여유가 생긴다.
포르투갈의 포르투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이른 아침 비탈길을 내려가며 멀리 글레리구스 탑을 바라봤다. 그날은 여행 셋째날이었고 대단한 설렘으로 혼미할 지경이었다. 여행이 무르익는 타이밍이었다. 포르투의 비탈길이 전혀 힘들지 않았고 오늘의 일정을 얼마나 멋지게 소화할까만 머리에 가득찼다. 미션 수행같은 느낌. 얼마나 단순하고 즐거운 삶일까. 잡념을 정리하러 여행에 가지만 좋은 곳에선 잡념따윈 생각나지 않는다. 자연 소멸같이. 어쩌면 자연치유.
일하러 가는 새벽길은 잠시 잠깐 여행의 새벽으로 통하게 하지만 여행과 일은 극과 극이라 지하철역에 도착해 서서히 일터로 발길이 닿으면. 훠어이 훠어이 사라져가는 설렘이어라.
가상으로 마련한 여행 기분, 그러니까 마치 여행의 허상, 그림자에 취한 이런 가상한 노력은 더 큰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법. 실체가 필요하다. 여행이 필요하다. 이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