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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하 Dec 29. 2020

달 이야기

목성과 토성의 대근접


그날도 여느날과 다르지 않았다. 집, 정확한 지점이라면 직사각형 내 방을 맴돌며 한낮을 보냈다. 눕거나 자거나 책 읽는 시늉을 하거나 영양가 없는 기삿거리를 읽었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먹을 걸 찾았다. 김 서너 장과 마른 오징어를 가스레인지 불에 구워 먹으며 거친 저작 운동을 해본다. 턱이 더욱 넙대대한 각을 드러낼 것만 같다. 짭짜름한 오징어로 몇 시간 후에는 목이 탄다. 시원한 물을 들이켜며 불룩해진 배를 주물럭거린다. 괜하게 체중계 위에도 올라가 본다.


한겨울, 짧아진 낮에 비해 어둠은 급작스럽게 찾아온다. 드문드문 바라보는 창밖은, 밖 풍경이 아닌 내 얼굴이 거울처럼 반사될 정도로 칠흑같다. 온종일 아무런 일없이, 감정의 동요를 억누르며 건조하게 보냈다. 작은 내 방이 내게 고립된 정서를 유발한다. 찬바람을 쐬어야겠다. 고여있는 공기 말고 살아 움직이는 공기가 급했다. 가까운 동네 공원을 돌아 보기로 한다. 걷기에 좋은 운동용 레깅스와 길다란 후드티를 입었다.


며칠 전, 목성과 토성이 거의 같은 궤적으로 달 중심을 돌면서 (지구에서 볼 때) 거의 겹쳐 보이는 몇 백년만의 일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천문학 쪽에서는 꽤 큰 이슈였는지, 유튜브에서 하늘의 행성을 고화질 카메라로 찍으며 생중계를 했다. 나도 두 행성이 맞닿는 광경을 보고자 하늘을 연신 바라봤지만,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전문가의 말. 띠 두른 행성과 동그란 행성이 이토록 맞닿아 있는 광경을 보는 일은 앞으로 60년 정도가 흘러야 한다.


어둠 속에 동그란 두 빛이 나란히 있는 광경은 달이 두 개 있는 것마냥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띠 두른 행성은 귀염성 있는 자태라 눈길이 안 갈 수도 없었다. 목성과 토성도 서로가 이렇게 가깝게 만난 건 20여년 만이라고 한다. 이다지도 애틋한 만남이 없군.


목성과 토성이 가깝게 만나는 것은 다른 행성들과는 달리 아주 드문 현상이다. 목성의 공전주기는 11.9년, 토성의 공전주기는 29.5년인데 공전주기의 차이로 두 행성은 약 19.9년에 한 번 가까워진다.

이번 두 행성의 만남이 다른 때와 다른 이유는 지구의 하늘에서 두 행성이 약 0.1도 간격을 두고 만나 거의 겹쳐지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1226년 12월 21일 이후 약 800년 만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씨넷은 전했다.

올해 목성과 토성의 만남에서 목성과 토성 사이 거리는 보름달 지름의 5분의 1 정도로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목성과 토성의 대근접은 2080년 3월 15일로 예측된다.

** 인용 : https://zdnet.co.kr/view/?no=20201223091407


목성과 토성의 멋진 만남을 담은 사진(사진= 트위터@EdPiotrowski)



하늘을 바라본다. 달을 자꾸 바라봤다. 고개를 들어 달의 얼굴을 보고 또 보았다. 답답함에 나간 그날엔 하얗고 울퉁불퉁한 데다 동그란 한 귀퉁이가 가려진 엉거주춤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내 눈은 달을 좇고 있었고 달은 구름에 자주 가려졌다.


달의 영험한 힘을 믿는 나는, 달에게 자주 묻곤 했었다. 답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빌곤 했다. 염치는 있는 사람이라 무턱대고 잘 되게 해달라고 빌지는 않았다. 여러 여정을 건너갈 용기를 달라고 만날 때마다 염원했다.

 

다음은 달에 대한 짧은 픽션이다.






달 이야기



잠시 지구를 둘러보던 달이 나를 보았다. 자주 쳐다보는 노골적인 나를 당할 재간은 없을테지. 달은 그 특유의 기운으로 나를 불렀고,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양 그대로 달에게 다가갔다.


"나를 왜 그렇게 쳐다보았던 거야?"

"전, 당신을 좋아하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았던 거예요."

"그렇군."

"달님에게도 제가 보였나요?"

"가끔 내려다 보곤 해. 규칙적으로 해야할 일을 하다보면 기계적이 돼 버려 가끔 기지개를 켜듯 훠이 둘러보지. 그러다 너를 보게 된 거야."

"아, 정말 다행이다!"


달은 내게 이것저것 물어봤고, 나도 성실히 답했다. 우리는 다음주 수요일 8시 정각에 오늘 본 공원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가끔 너처럼 나를 빤히 보는 사람들을 만나곤 해.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모두들 내게 좋은 감정을 갖는 것 같더군."

"달님을 자주 바라본다는 건, 달님을 좋아한다는 뜻이니까요. 저도 역시 그렇고요. 저 바로 전에 만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음, 굉장히 수줍은 여학생이었어. 순수했고, 꿈도 많아 보였지. 앞으로도 나를 기꺼이 바라볼 거고, 그때 만난다면 좀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

"아, 참 예쁜 친구로군요."


달이 나를 어떻게 기억해줄까.

목성과 토성이 서로 만나듯, 나도 달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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