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라스트 홀리데이, 오너먼트와 파운드 케이크, 노란 불빛
요 며칠 간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사진들이 내 사진첩에 담겨 있는 까닭에, 하릴없이 크리스마스를 뿌려볼까 싶어 타자를 두드린다. 쓰다 보니 은근하게 크리스마스의 기운이 샘솟아 버렸다.
자가격리로 제때 못 올지도 모르는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유례없는 올해의 크리스마스. (어린이들이여, 걱정 마시라! 산타 할아버지가 자가격리 시간까지 계산해 미리 입국하셨다고 하니까!) 그렇지만 크리스마스라는 다섯 글자의 묘약은, 별다른 이슈 없는 성인 여성도 들뜨게 하는 구석이 있다. 빨갛고 하얗고 반짝이는 정경과 소리로 가득차게 한다.
얌전해야만 하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이어야 하니 더욱 내밀하고 혼자만의 감정이 고조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그랬지만, 정작 크리스마스 당일보다 그날을 기다리는 시간이 좋았다. 여행도 가기 전에 계획 짜고 기대감에 부푼 때가 좋은 것처럼. 그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어서 갖고 있는 사진이며, 기억이며 주섬주섬 꺼낸 것이 이렇게 설렐 줄이야. 어쩜 나이가 켜켜이 쌓아 올라가니 자리 잡고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따듯해지는 재주도 생긴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읽는 것은, 추억을 먹고 살며 근사한 상상으로 만드는 나의 크리스마스를 위한 시간이다.
집안을 장식하고 홈파티를 할 수 있는 오너먼트와 식기들이 아주 예쁘게 디피되어 있었다. 사진을 바라보며 크리스마스 저녁을 상상한다. 텔레비전에는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외화물이 방영된다. 파운드 케이크를 빵칼로 정교하게 잘라 예쁜 접시 위에 담고, 목재나 은재 포크로 먹기 좋게 떠서 오물오물 먹는다. 쇼파 위에 놓인 알록달록한 패브릭 천을 어깨에 두르고 따듯한 뱅쇼를 홀짝인다. 가끔 창밖을 내다보면, 하얀 눈이 보슬보슬 내려오는 광경이 보인다. 살짝 서늘한 기운에 어깨를 움츠리며 어깨에 두른 담요를 매만진다.
고요한 어둠 속에 불을 밝히는 커피숍 앞 나무에는 동글동글한 전등이 달려 있다. 서늘한 겨울 공기에 노란색 불을 밝히는 따듯한 조명.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카페의 음악이 깊어가는 겨울임을 알게 한다.
지금, 어떤 음악을 듣는 게 좋을까. 크리스마스 보사노바 재즈와 김동률의 노래를 번갈아 듣기에 요즘만큼 좋은 때가 없다. 크리스마스를 몽글몽글 피어나게 하는 멋스러운 음악인 재즈풍의 캐럴과 급격하게 감수성을 자극하는 김동률의 노래를 들으면, 다양한 감정이 차오른다. 섬세한 감각으로 플레이 리스트를 선별해놓은 유튜버들이 참으로 많아서, 그들의 쥬크박스를 bgm으로 깔아두면 그야말로 크리스마스다!
그리고, 기어이 가슴을 쿵쿵 두들기고야 마는 김동률. ‘이제서야’가 흘러 나오는데 어째 그리 그 목소리와 멜로디, 가사가 가슴을 후벼 파는지... 듣다가 훌쩍이겠다 싶으면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딩기디 당가 해야해요. 냉탕과 온탕을 넘나 드는 음악의 조합이다.
영화도 빠져서는 안 된다. 물론 크리스마스에는 캐빈이지만, ‘라스트 홀리데이’식의 판타지에 풍덩 빠져 보기를 추천한다. 성실히 일하던 주인공, 별안간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짝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도 꿈꿨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모아둔 돈을 몽땅 인출한 뒤 해보고 싶었던 일을 잔뜩 하기로 한다.
올해에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믿어보려 한다. 늘상 현실적이었던 나는, ‘그럴 리 없잖아!’라며 체념하곤 했다. 하지만, 나도 조지아 버드처럼, 판타지라 하여도,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믿을 생각이다.
크리스마스니까요,
우리에게 다가올 따듯한 기적이 꼭 이뤄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