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하 Jan 08. 2021

겨울에서 살아가기

물, 밤, 눈 그리고 출근


겨울이다. 작년엔 롱부츠도 신어본 적 없을 정도로 미지근한 겨울이었는데, 올해는 영하권의 두자릿수 추위가 귀끝을 새파랗게 얼린다. 모름지기 겨울은 추워야지라는 겁도 없는 말이 쏙 들어갈 정도로 폭설과 칼바람에 온몸이 시렵다. 2020년의 끝과 2021년의 시작 모두 겨울이다.


청계천 폭포


광화문은 청계천의 시작점이다. 이곳에는 폭포가 있는데, 사시사철 멈추는 일 없이 물이 떨어진다고 한다. 폭포 바로 위에는 분수도 조성되어 있는데 4월부터 11월 중순까지만 가동된다. 이곳의 폭포는 인공이며 높이도 낮지만, 거침없고 쉼없이 떨어지는 물의 움직임과 소리는 차가운 겨울 공기를 더욱 맹렬하게 만든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의 '폭포'의 한 부분. 폭포는 하강하고 부서지면서도 좌절보다는 강인함으로 상징된다. 오히려 상승과 함께 필연적인 하강으로 귀결되는 분수나 그네처럼 어쭙잖지도 않다. 자의에 의한 하강, 부서지더라도 온몸을 던지겠다는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겨울 폭포는 나태한 정신을 깨버린다. 니체같이.


공원의 겨울 밤


낮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의 초입만 되어도 사방이 어둠으로 잠식된다. 저 멀리 보이는 산에는 능선을 따라 빛이 연결돼 있다. 산책로일까. 눈이 그 불빛을 따라 가다 보면 밤은 계속 깊어간다.  


먼지처럼 보이지만 눈


눈이 내린다. 먼지처럼 흩날리던 눈은 갑자기 속도를 내며 내쪽으로 꽤 세차게 자기 몸집을 들이민다. 촘촘하게 발사하는 눈을 피해 집으로 달려온다. 내일이면 눈이 소복히 쌓여 있겠지.


크리스마스에도 못 본 것 같은 크리마스 느낌 나는 눈 쌓인 나무



폭설로 인해 아침 출근은 혼돈이었고, 눈이 쌓이고 얼어 미끄러질 새라 종종 걸음을 걸었다. 조금 일찍 출근길에 나섰지만 지하철은 계속 연착됐다. 눈이 오면 통신 수단도 고장이 나는 건지, 안내 방송마저 지지직 거려 어떤 내용인지도 알지 못해 더 심란해졌다. 다른 라인으로 우회하여 출근을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그쪽도 연착되거나 붐비지 않을까.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무사히 지하철은 탔으나, 부주의로 인해 내려야 할 정거장 전에 내려 버렸다. '내 정신 좀 봐!' 급하게 내리는 내 귓전에 울리는 말. "미리 내렸어야지. 지금 내리*%#$#$" 알아요, 그대로 타고 갔으면 될 것을 굳이 굳이 밀고 내려 버린 것. 그런데 내 목적지가 아니라니... 그곳에는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탄 지하철에 또 많은 사람들이 타야했다. 또 한 번 고민을 했다. 택시를 타고 가야 할까. 다음 열차에 낑겨 탔고, 잘 내려서, 눈길을 달려 회사에 도착했다. 후우. 눈이 많이 내린 날, 고민과 선택으로 꽤 에너지를 소모했던 출근길이었다.

(폭설 와중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출근했던 모든 직장인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출퇴근 고생 많으셨을 거예요. 우리, 참 열심히 살고 있네요!)  


추위에 강한 사람이 될 거라고 하면서 옷을 너무나도 비둔하게는 껴입지 않기로 했는데, 추위가 몸을 엄습해서 한기가 돌면 집에 돌아와 이불 안으로 들어가 덜덜 거리며 잠들기 일쑤다. 아마도 연말 내내 따듯하고 여유롭게 보내다 1월의 일주일 출근에 고단함도 있지 않았을까 한다. 어쨌든, 12월을 넘어 새해의 1월이 시작됐고, 일주일이 흘렀다. 계획도 세우고 시간을 아껴쓰기로 다짐했는데 이번 일주일은 왠지 엉거주춤한 것 같아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겠다. 의외로 겨울은 빨리 간다. 움트는 봄이 와서 후회하기 전에, 1월을 곱게 아껴 보내기로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