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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하 Jan 20. 2021

읽은 책을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

남의 리뷰를 보지 말라구요?


현란한 영상이 넘치는 와중에,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조그마한 섬에서 남들은 모르는 만족감과 자족감을 챙기며 미소짓고 있는 것만 같다. 백수린 작가는 힘들 때 “나에게는 소설은 있어!”라며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백수린 산문집인 <다정한 매일 매일> 中) 우리같은 애서가들에겐 내 이름을 건 소설은 없어도 책은 있다. 읽히지 않은 무수한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그 바다에 잠식하기로 합의했으므로.


그래서 더욱 잘 읽고 싶다. 책이 나를 쓰윽 훑고 지나가 멀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책 안으로 온몸을 흠씬 적시고 싶다. 읽었지만 읽지 않은 결과라면, 몹시 곤란할 것 같다. 스치고 가는 책들도 많겠지만, 권수를 쌓아 올리는 것만 치중한 독서보다는 자신에게 잘 맞는 책을 만나서 의미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제대로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좀더 공을 들여 읽어야 읽은 책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잘 읽기 위한 절차나 방법을 고민하는 중이다. 일단은, 다들 아는 방법이나마 풀어보고자 한다.



1. 읽으면서 와닿거나 중요 문장을 메모하거나, 포스트잇을 붙여 표시한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흥미있는 사건보다 문체나 어휘, 문장 구사의 탄력성과 흐름을 꽤 선호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데, 애매하고 몽환적인 사건이더라도 그걸 끌고 나가는 작가의 문체가 단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글들은 메모하고 곱씹고 짜릿해지는 경우들이 많다. 알고 있는 감각과 생각이 글로 알맞게 표현되고 상투적인 비유를 넘어서는 낯선 낱말들의 조응은 언제든 환영이다.


충실한 독자로서의 읽기 행위. 메모와 표시, 리뷰, 생각 나누기.


마음에 드는 문장이든 정보성 책에서의 핵심 문장이든 그 부분을 메모하거나 표시해 놓는 것은 다시 읽을 것을 염두해두는 작업이다. 물론 꼼꼼하게 읽는 것은 아니고, 표시해둔 부분의 앞뒤를 다시 읽는 것이다. 그때는 내가 왜 이 부분에 집중했는지 생각해 볼 수 있고, 의미를 분명히 할 수 있다.



2. 서문, 작가의 말, 에필로그, 역자의 말 등도 꼭 읽어 본다.


서문의 경우, 글쓴이가 글을 쓴 배경과 독자에게 당부하는 말이 담겨 있어 가이드가 된다. 보통 소설에는 잘 없지만 에세이나 정보성 책에서는, 서문을 통해 저자가 어떻게 책을 구성했고 어떤 방식으로 끌고 나갈 것인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대략의 큰 그림을 그리고 읽을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글의 뒤에 붙는 작가의 말은 다시금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창구가 된다. 번역자의 말이 붙을 때는 작품을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글은 내 생각이 먼저 정립된 뒤에 읽는 것이 더 나으리라 생각된다. 작품 외에 부가적인 글이라고 생각되어 잘 읽지 않고 넘어가곤 했는데, 읽고 나니 명확해지는 구석이 있어서 챙겨 읽고 있다.  



3. 리뷰를 쓴다.


학생 입장으로 본다면 독서 감상문, 독후 기록장이라고 볼 수 있는 리뷰 작성하기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느낀 바가 없는 책도 무수히 많다. 세상에는 좋은 책도 있지만 좋지 않은 책도 있고 나와 맞지 않은 책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책을 다 리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나에게 의미 있는 책을 정리하면, 내 생각을 분명히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나중에는 그 기록을 통해 책을 떠올릴 수 있다.


리뷰 작성은 책을 읽을 때 메모하고 표시해두는 작업부터 시작이다. 그 문구에서 내가 느낀 감정을 기록할 수 있다. 읽은 책에 대해 쓴다는 것은 쉬운 작업은 아니다. 대략의 줄거리를 요약할 줄도 알아야 하고, 작가의 의도나 주제 파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 것도 쉽지 않고, 책에 대해 쓰는 일은 더 녹록치 않은 일인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에게는 자신이 본 것과 느낀 것을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리뷰 작성은 그러한 욕구를 해소하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독서 모임을 통해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혼자서 와구와구 말하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리뷰들이 쌓이면 꽤 그럴듯한 독서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진다.



4. 리뷰까지 썼다면, 이제 남들의 리뷰도 구경한다.


책을 다 읽고 리뷰까지 쓰면 분명하지 않았던 생각이 조금 뚜렷해지곤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남들의 생각은 어떤지 구경하러 가본다.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약간 다른 결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리뷰 구경도 재미있다. 그런데, 내 생각이 묘연한 상태에서 타인이 정리한 리뷰나 번역자의 말을 읽으면, 내가 주인이 된 독서가 되지 않는다. 이건 수학 문제를 풀다가 잘 모르겠으니 해답지를 보는 것과 같다. 나의 뇌는 책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이미 정리된 의견/느낌/생각을 내 생각으로 편승시킨다. 그렇다면 책은 내가 읽었으되, 내 생각은 없고 남의 생각이 가득차 버리는 객들의 천국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뷰를 쓰지 않더라도 한 번 생각하는 과정을 거친 후 남들의 리뷰를 구경하는 것이 어떨까.


프랑수아 봉뱅, 책과 종이 그리고 잉크병이 있는 정물(1876)



기억 밖으로 밀려 나가는 책들을 꽉 잡아두기 위해 시간과 애정을 들이는 일이 즐겁다면, 이미 우리는 한 배를 탄 것 같다. 책은 여러모로 굉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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