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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하 Feb 08. 2021

섬에 있는 서점/개브리얼 제빈

온기 가득한 책을 찾고 있으시다면


정말 재미있었고 감동적이었다!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았고, 뻔하면서 뻔하지 않았다. 따듯한 소설을 우연히 읽고 뭉클해진 건 참 오랜만이다.



1) 책을 좋아한다.
2) 작은 서점을 좋아한다.
3) 책에 대한 티키타카 하는 걸 좋아한다.
3) 자극적인 것들에 피로감을 느꼈다.
4) 무겁고 침울한 소설에 지쳤다.
5) 겨울에 읽을 책을 찾고 있다.



위의 다섯 개 항목에 해당된다면 이 책 읽기를 주저없이 권하고 싶다. 이 책의 따듯한 손을 냉큼 잡았다. 얼마나 몸을 녹여줬는지 모른다.



앨리스 섬에는 아일랜드 서점이 유일한 책방이다. 서점의 주인은 ‘에이제이’. 자동차 사고로 아내와 사별했고, 혼자서 책방을 운영 중이다. 까칠할 대로 까칠해진 그에게 다가온 사람들... ‘어밀리아, 마야, 램비에이스...’ 그리고 한껏 따듯해지고 눈물이 핑도는 이야기! (자세한 내용은 읽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우선 이 책의 앞장으로 장식해 놓은 문구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너무 황홀해서 따로 적어두기까지 했다.


어서, 그대여
그대와 내가
완전히 스러지기 전에
서로 열렬히 사랑합시다




결국 이 책의 주된 줄기는 사랑이다. 에이제이가 미카와 어밀리아를 만나고 건네고 받은 건 사랑이다. 존재가 소멸하기 전에 ‘열렬히’ 사랑하는 건 무척이나 중대한 일이다.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사랑받지 못하리라는 은밀한 두려움이 우리를 고립시킨다. 하지만 고립이야말로 사랑받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다. 언젠가, 언제일지 모르는 어느 날, 당신은 차를 몰고 길을 가리라. 그리고 언젠가, 언제일지 모르는 어느 날, 그가 혹은 그녀가 거기에 있으리라. 당신은 사랑받을 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결코 혼자가 아니기에. 혼자가 아니기를 선택했기에.’ - 196p.




다음 부분은 읽다가 혼자 웃은 부분이다. 서점 주인인 에이제이가 에드가 엘런 포의 희귀작인 ‘테멀레인’을 도둑 맞은 후 손님들의 질문과 반응이었다.



“‘테멀레인’에 대해 소식 없어요?”

= 당신의 중차대한 개인적 손실을 내 개인적인 즐거움으로 삼아도 될까요?


“아직, 아무 얘기도.”

= 사는 건 여전히 엿같지.


“아, 분명히 조만간 뭔가 나올 거예요.”

= 현 상황이 어찌 되든 어차피 난 투자한 것도 아니니 낙관적으로 본다고 손해볼 건 없지.



이 책에는 이런 재기발랄하고 고품격의 언어유희가 곳곳에 스며있다. '당신의 중차대한 개인적 손실을 내 개인적인 즐거움으로 삼아도 될까요?' 타인의 손실_loss에 대한 걱정하는 말에는 '너의 잃어버림이나 상실, 슬픔 대비 나는 괜찮다는 안위'의 감정도 들어 있는 경우도 있지 않은지. 평소 책을 읽지도 않은 사람들이 책방에 들어와 건네는 말에는 호사가스런 냄새가 풍기긴 하니까. 숨어 있는 말뜻의 얄미움을 이렇게 고급지게 표현하다니 혼자 엄청 깔깔거렸다.


더욱이 실제 책을 인용한 농담과 대화는 정말 딱 내가 사족을 못 쓰게 좋아하는 지점이다. 그런 부분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 수많은 책 제목과 내용을 근간으로 한 대화는 지적인 감수성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에이제이와 어밀리아의 저녁 식사는 이런 대화로 흐른다. 서점 주인인 에이제이와 출판사 직원인 어밀리아의 대화에 책은 빠질 수 없었고, 이와 연결된 티키타카는 연인이나 사람 사이의 생기 넘치는 대화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당신은 어떤 소설을 배경으로 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으면 좋겠어요?” 에이제이는 어밀리아에게 물었다.

“아, 어려운 질문이네요. 전혀 뜬금없긴 한데, 대학 다닐 때 ‘수용도 군도’를 읽고 있으면 그렇게 배가 고파지더라고요. 소비에트 교도소의 빵과 스프에 대한 온갖 묘사들 하며.” 어밀리아가 말했다.

“참 특이하시네.” 에이제이가 말했다.

“그거 칭찬이죠? 당신은 어디가 좋을 것 같아요?” 어밀리아가 물었다.

“이것 자체만으론 레스토랑이 되진 않겠지만, 난 항상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터키시 딜라이트를 먹어보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읽으면서 에그먼드가 터키시 딜라이트 때문에 가족을 배신할 정도라면 그건 진짜 어마어마하게 맛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책은 확실히 읽는 중에 기분 좋아지는 책이다. 온갖  제목등장에 눈이 돌아가고, 갑자기 등장하는 사건들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마냥 조용한 책은 아닌게, 나름의 굉장한 사건들이 터지고 눈물샘도 자극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삼삼한 음식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다가 중간 중간 초콜렛이나 도넛으로 당이 마구 올라가는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다. 건전하지만 살짝 아슬아슬한 느낌나는 책이랄까. 그저 서점 주인이 주인공이라니, 그것만으로도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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