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바라본 창밖 풍경_알바르 마르케의 그림들
집이라는 공간은 굉장히 내밀하다. 한 사람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굉장히 사적이고 편하며 단지 나로 머물 수 있는 내 방에 내가 놓여있다. 굉장히 사적이고 편하며 단지 나로 머물 수 있는 내 방에 내가 놓여있다.
꽃무늬 이불보, 먹다 만 초콜릿이 담긴 구겨진 은박 봉투, 읽다만 쌓인 책들
옷걸이에 걸린 루즈한 코트들, 카테고리를 찾지 못해 정리되지 못한 물품들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는 나, 장면을 거의 다 외워버린 시트콤 프렌즈가 켜져 있는 노트북
이제는 거의 고물이 되어가는 덜커덩 거리는 선풍기, 떨어진 머리카락이 붙은 파란 돌돌이 테이프
그렇게 방을 두리번 거리다 창밖 풍경을 마주한다.
창틀이라는 액자에 가둬진 흔들리는 그림인양 언제나처럼 한 공간을 채운다.
도시인들의 방범을 지켜주는 쇠창살과 온갖 벌레를 막아주는 방충망이 시야를 방해하긴 하지만,
내 방 창밖에는 나무가 바람에 흔들거리는 풍경이 보인다. 풀벌레 소리도 지릉지릉 들린다.
거실로 나오면 이사 오기 전에 베란다를 터놓아 커다란 통창으로 서울 도심의 야경이 보인다.
운이 좋게도 앞에 가리는 건물이 없는 우리집층에는 쇼핑몰들의 번쩍이는 불빛을 멀리서 볼 수 있다.
주거지로 둘러싸인 집 주변에서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부르릉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어느 화가의 집 밖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나 보다.
바다와 하늘은 물기 가득한 연보라색과 흐릿한 하늘빛을 머금는다. 바다 위 범선이 호젓하게 흘러간다.
창틀에는 색색의 꽃이 꽂힌 화분이 바다를 마주보고 있다.
이 그림은 거칠고 투박한 붓선과 은은한 배경색 대비 쨍한 화분 안의 꽃 색상 조화에 기분이 좋아진다.
야수주의 성향의 프랑스 화가인 '알베르 마르케'의 <La ventana en La Goulette>라는 그림이다.
(La Goulette는 지명 이름, La ventana는 창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요새 연보라색에 마음이 끌려 (라벤더 색상이랄까) 이 그림을 보고 내 마음과 눈이 편안해졌다. 야수파 그림은 붓터치가 과감하고 굵직하고 어찌보면 대충 휘갈긴 느낌이 있는데, 바다 위에 여울을 큰 생각 없이 직직 그었을 화가의 무심함이 느껴져 그것마저도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창틀 아래 벽지도 물이 잔뜩 들어갔거나 부족한 물감의 양으로 문양을 새겨넣어서 흐트러짐으로써 마음의 고삐를 풀어준다.
알베르 마르케 [Albert Marquet]
프랑스의 화가. 초기 작품은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의 대비와 대담한 묘사로 야수주의의 성향을 보였으나 점차 색채의 조화를 중시하는 온화한 화풍으로 변모했다. 색과 빛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지녔으며 강과 바다, 항구와 범선이 있는 풍경은 그의 작품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 출처 : 두산백과
알베르 마르케 그림을 더 찾아보니, 집 안에서 창 밖을 담은 그림이 많았다.
야수주의 성향으로 투박하고 흐릿한 선의 그림이 매력인 알베르 마르케의 창 밖 풍경의 그림들.
이렇게 창밖의 풍경을 보여주는 그림은 구도가 방(집) 안에서 방(집) 밖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림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도 화가의 위치에 놓여 있게 하여 밖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나의 방 밖에도 이러한 진풍경이 펼쳐지는 듯한 혼미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나도 화가와 같이 프랑스 자연 어딘가에 위치하게 한다.
활짝 열어놓은 창 밖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한 여인이 무언가를 만드는 것 같다.
구도, 원근법, 색감 모두 명징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래서 더 질리지 않고 오랫동안 들여다 보게 된다.
평화로움이 잔잔하게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