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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하 Nov 09. 2020

자작나무숲, 추위마저 아득해진다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 산행



몇년 전 겨울 자작나무숲에 다녀왔다.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한 춥지만 황홀하게 따듯했던 인제 여행이었다. 겨울이 그 추위의 내음을 풍기는 지금 자작나무숲이 그리워진다. 그 하얀 나무껍질의 촉감이 손에 맨들맨들 느껴진다. 아래는 그때의 기억을 담아낸 글이다.







자작나무를 보고 싶었다. 눈쌓인 틈에 날렵하게 솟아있는 자작나무 숲 사진을 보고는 너무나도 예뻐 저장해두었다. 자작나무, 자작나무... 이름을 대뇌이는 것만으로도 겨울이, 추위가 성큼 다가온다.  



강원도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소나무와 느티나무같은 굵은 아름드리 나무들과는 다른 길쭉하고 스키니한 자작나무는 부드러운 속살을 가지고 있단다. 물론 껍질이 벗겨진 대부분 나무의 속은 부드럽겠지만 자작나무의 하얗고 부드러운 속은 기분좋은 촉감으로 부들부들했다. 어느 누구의 발자국도 닿지 않은 설원에 촘촘히 서있는 긴 자작나무를 보고 있자면 무민의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신비한 세계의 진입 같은 느낌이 나는 것이다. 



겁도 없이 인제행을 한 날은 무지 추운 날이었다. 강원도였고 산이었다! 추위는 호들갑 떨 정도로 손사래를 치는 나이기에 가기 전부터 추위가 몰아칠 그 상황에 호들갑스런 겁을 느꼈다. 엄마 아빠는 추운데 강원도가 웬말이니라는 반응이었고 "나는 인제가 강원도인 줄 몰랐어...."하며 짙은 어리석음을 과시했다. 인제는 그저 인제인 줄 알았지. 



도착해서는 많이 춥진 않았지만 산으로 들어가니 역시 춥긴 추웠다. 발가락이 얼어붙었고 장갑 없이 맨손을 꺼내는 게 극도의 공포였다. 겹겹 옷에 아래는 골덴바지를 입었다. 어울리지 않지만 제대로 된 등산을 해본 적 없어 용품이나 옷도 없고 엄마의 등산복이 입자니 쑥스러워 어쩔 수 없는 복장이었다. 그래도 내가 가진 옷 중 제일 따듯한 바지였는데 맹렬한 추위가 내 앞다리를 따끔거리게 했다. 



그래도


추위가 나를 뒤흔들었어도 


눈쌓인 자작나무숲은 참 예뻤다. 


겹겹 껴입은 덩어리진 몸이어도 쌓인 눈이 반사판을 만들어주는지 예상보다 사진도 예쁘게 나와서 기분이 더 좋았다. 가진 얼굴보다 맑고 밝았다. 



짜잔! 



아이젠 삼총사



저어기 주황색 신발의 주인공이 아이젠을 세 개나 챙겨왔고 아침 못 챙겨먹고 왔을 우리를 위해 인당 사과 하나를 예쁘게 잘라 봉지에 넣고 음료수랑 바나나, 과자까지 준비해왔다. 크헉, 따봉! 



아이젠은 최고였다. 미끄러운 눈길에 매우 강단있는 발걸음을 가능하게 했다. 빙판길을 쭈뼛거리며 걷던 내가 아니었다. 대단히 용기있고 거침없는 사람이 되게 했다. 아이젠을 장착한 내가 되고 싶다. 어디서든 언제든. 



식당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얼굴을 마주 대하며 그간의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 연애사와 직장 이야기를 하며. 지인은 남친에게 결혼하자고 얘기했노라는 말을 전했다. 이런 저런 스토리를 함께 공유하던 사이였고, 친한 누군가의 결혼이기에 잠깐의 놀라움도 있었다. 물론 난 그녀의 행복을 바라왔고, 내게 너무나도 좋은 인연인 그녀가 좋은 사람과 그녀가 가진 예쁘고 좋은 면들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네 코가 석자 아니니라는 말이 떠오르는 머쓱한 상황이다. 







오랜만에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몸 상태가 베스트는 아니었지만 그리 힘들지 않았던 건 아마 자작나무가 건넨 상쾌한 바람덕분이었겠지. 신기한 건 갔다온 다음날인 오늘 서울도 꽤꽤 추웠다는데 자작나무숲에서 발가락이 덜덜 거렸던 게 생각나 그리 춥다는 생각도 적었다. 역시... 단련인가? 



올 겨울에도 자작나무를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아니, 그저 산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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