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하재영
집은 나의 본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곳이면서,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장 편안한 곳이다. 좀더 쾌적하고 안락하게 살고 싶은 갈망의 결정체. 자산 규모나 투자와 연결되지 아니할 수 없다. 넓고 쾌적한 집 그리고 역세권, 숲세권. 집이라면 할 말이 많아질 수 있는, 굉장히 다차원적인 소재라는 게 새삼 놀랍다. 내 한 몸 잘 뉘이는 삶은 도전인 것인가.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그가 살았던 집에 관한 기록이 담겨있다. 집을 소재로 한 책은 처음이라 흥미로웠다. 어린 시절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부터 가세가 기울어 작은 집으로 이사하고, 살던 지역을 벗어나 서울로 올라와 적은 돈으로 살만한 집을 고르고 옮기는 과정. 소소하면서도 분투한 작가의 시간이 담겨있다. 엄마(여자) 공간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거실이나 주방이어야 할까와 같은 고찰까지.
나는 작가와 달리 지금 동네에서 오랜 시간 살아왔다. 총 네 번의 이사를 했는데, 유치원 시절 잠깐 다른 구로 이사간 때를 제외하고는 이 동네 근방으로 세 번의 이사를 했을 뿐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다 보니 대학으로 상경하는 일도 없었다. 대학도 집 언저리였고, 직장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이 가능했다. 독립을 한다는 건 설레는 일이긴 했지만 집을 구하고, 관리비를 내며, 혼자 저녁을 먹는 일련의 일들은 수고로운 일이었다. 부모님은 잔소리나 간섭을 하시는 분들이 아니어서 눈치 없고 대담하게 지금까지 부모님 곁에서 안락하게 살고 있다.
20대에는 공부에 좀더 매진하고자 고시원에 들어갈까도 생각했다. 여성 전용 고시원에 전화해서 비용을 물어보고, 찾아가겠노라고 연락한 뒤 문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온 적도 있다. 혼자 사는 일은 어른이 되는 여러 일 중에 하나인 것도 같다. 사는 곳을 옮겨 다니지 않은 점이 내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했을테지.
어느 곳에서 사는지, 이동이 많았는지, 이동이 없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사람은 고유의 존재이긴 하지만 환경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이므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 사람이 조물조물 빚어진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부유한 조부 덕분에 서울의 강남이라 부르는 수성구의 ‘명문빌라’라는 넓고 좋은 곳에서 살았지만, 아빠 사업의 부도와 IMF로 집도 살림살이도 소박해졌다. 성공가도를 달렸던 사람들이 급격히 쇠락해지는 일은 그때 당시 흔한 일이었다. 다만, 큰집에서 작은집으로의 이동은 현실 직시를 체득하는 적잖은 충격의 과정일 것이다.
가고 싶은 데 가서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대구에서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집에서 빈둥거리자 엄마는 그런 말로 나의 서울행을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어서 서울에 가려는 게 아니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집 안을 떠도는 불운의 기운에서, 가족들의 한숨소리에서, 이곳이 내 세상의 전부일까 봐 두려웠다. - 52p.
스물 한살, 작가는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온다. ‘이곳에서 그대로 낡아지면 어쩌지’ 염려는 이동을 촉발한다. 작가는 서울에 올라와 신림동, 금호동 등지로 이동했다. 세입자는 기한이 지나면 옮겨야 했고, 한정된 예산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발품을 판다. 이것이 괜찮으면 저것이 부실한 집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그 안에서 터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작가는 동생과 서른 둘에 각자의 공간을 마련하기로 하고 방을 구하고 셀프 인테리어까지 한다. 자기 손을 만든 자기만의 공간을 처음 만난 것이다. ‘30대이고 혼자 나를 책임지고 있었다. 안온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짊어지기로 다짐하고 만족감을 느끼며 서서히 세상으로 나아가는 작가의 모습.
나의 공간은 어디일까. 커다란 우주 속 티끌만한 내가 나의 자리와 공간을 점유하려고 분투해 왔다. 그것이 물리적인 내 몸을 뉘일 수 있는 자리이기도, 누군가의 곁에 나를 들이는 일이기도, 사회 속에서 존재감 있는 존재로서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기도, 여러 사람들 속에 나의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작은 존재더라도 아주 미미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들은 여기에 내가 있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저마다 노력하며 사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