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득하려면 직접 해보아야 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여름&가을편

by 나하



여름에는 여름 영화를 본다. 끈끈하고도 강렬한 영화도, 풋풋한 감성이 살아있는 영화도, 등골 서늘한 오싹한 영화도 좋다. 흔들리고 자라고 푸릇해져서 좀더 다채로운 느낌이 살아 숨쉬는 계절. 사계절을 인간 삶에 빗대어 얘기하면 푸르디 푸른 청춘의 계절이 여름인 것.



리틀 포레스트: 여름&가을 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이치코는 엄마와 둘이 코모리에 산다. 어느날 말도 없이 떠난 엄마, 남겨진 이치코. 이치코도 코모리를 떠나 잠깐의 도시 생활도 했지만 다시 돌아온다. 코모리를 나간 것도 다시 돌아온 것도 제대로 삶을 마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모리에서도 진정으로 지내는 게 아니다 보니 늘 물음표가 둥둥거리지만 바쁜 농사일로 미적거릴 뿐이다. 그런 채로 사계절 농사 짓고 요리하고 맛있게 먹는다. 직접 기른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과 계절의 풍경, 내면의 갈등이 교차하는 조용한 영화다.





여름에 수유 열매가 열리는가 보다. 수유의 계절이 찾아왔고, 이치코는 알알이 달린 수유를 따서 수유잼을 만들기로 한다. 수유를 따면서 이치코는 생각한다.





많은 열매가 떨어져 썩어간다.
그 많은 과정들이 쓸모없게 되었다.
"그런 건 너무 슬프잖아."







열매를 맺기 위해 한 철 불철주야 달려왔는데, 보람 없이 떨어진다. 성실히 살아왔는데 낙하할 뿐이라면, 내 열매가 보잘것 없어진다니 감정이입이 짙어진다.



나무에 달린 성한 열매를 따서 잼을 만든다. 과육과 설탕을 넣어 조린다. '설탕을 더 넣어볼까, 너무 달게 하고 싶지 않은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잼이 완성되어 버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끝나 버렸다. 갈팡질팡 하는 사이에 완성된 잼은 시다.





이것이 지금 내 마음의 색깔일까.









토마토는 이치코가 좋아하는 식재료 중 하나. 토마토하면 채소인지 과일인지 그 경계에 있는데, 그냥 먹는 것도 좋지만 요리해 먹을 때 그 맛이 진해지니 채소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토마토 스파게티를 해먹어도 맛있다. 살짝 데쳐서 껍질을 벗겨낸 후 물을 담아 병째로 뜨거운 물에 소독해서 보관하고 하나씩 먹는 맛도 좋다.








토마토는 비에 약해서 농사 짓기가 힘들다. 코모리에서 안전하게 토마토 농사를 지으려면 하우스에 하는 게 좋다는 마을 어른의 말. 사먹거나, 소독을 하거나 이런 저런 조언을 듣지만, 이치코는 노지에서도 잘 재배하고 싶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우스를 짓게 되면 코모리에 정착하게 될까
그게 기정 사실이 될 것 같아
계속 미루고 있는 거다





리틀 포레스트는 여름&가을편과 겨울&봄편 두 편으로 구성되었으며, 만화가 원작이다. 이 영화를 처음 접한 건 정말 오래됐다. 한국 리메이크 버전은 한국 정서에는 더 맞긴 한데, 담백하기로는 일본편이 좋다. 여름&가을이 엮여 있어 전반부는 여름, 후반부는 가을이 나오는데, 군침 도는 음식으로 치면 가을이나 겨울편이 더 볼거리가 많다.



삶을 제대로 마주하는 일이 이치코에게 숙제처럼 따라 다닌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사라진 엄마와 의지할 곳 없이 혼자 고군분투 해야 하기에 더더욱 치열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자신의 모습이 납득이 되지 않은 채로 코모리에 머문다. 이치코는 코모리에서도 도시 생활에서도 확실하지 못한 채로 생각에 잠긴다.



겨울&봄편에서 유타라는 남자애에게서 혼자 사는 거 대단한데, 그냥 열심히 하는 걸로 때우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너무 맞는 말을 콕 찝어서 하긴 했지만 어쩐지 가혹하기도 했다. 유타는 도시 생활의 염증, 그러니까 직접 경험해보지도 않고 이러니 저러니 말하는 사람들의 말과 생활에 신물이 나 코모리에 돌아온 동네 후배다. 유타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의 방향이 코모리와 맞다는 확신을 갖고 이곳에서 만족스런 삶을 살아가는 인물.



그래서 이치코도 마주하기로 한다. 마주한다는 건, 대단한 성취를 달성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누구이며, 지금에 확신을 갖고 사는가를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접 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납득을 위해서는 실제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야 나를 알 수 있겠지. 막연히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어라는 생각에서의 판단이 아니라 경험에 의한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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