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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하 Aug 18. 2021

편하기만 해서는 곤란하지

이직러의 소회


독립을 했거나 결혼을 했거나 아가를 낳고 키웠거나 기타 등등 어른이 된다는 건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독립, 결혼, 출산은 하나의 예일 뿐이지 필연적 어른의 조건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확실히 책임지거나 좀더 확대된 존재를 보살피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치열해지는 일은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가는 시험은 되지 않을까. 그 시험은 당연히 쉽지 않으며, 고단하고 괴롭고, 벼락치기나 요령으로도 안 된다. 물론, Pass or Fail로도 갈음할 수 없다.



오랜 싱글의 삶에서 자문해 본다. 어른이거나 기꺼이 책임과 제 몫을 충실히 하고 있느냐고. 어른으로서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으며, 어쩌면 유예나 보류로서 머물고 있는 건 아닌지. 자유라 칭하지만 모르쇠에 더 가깝지 않을까. 결국 자문은 자책으로 귀결되는 모습인데, 마냥 자책할 수만도 없다. 오히려 책임감이 커서 무턱대고 하지 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무거움을 과연 견딜 수 있는가 가늠하다 보면 움직이기 쉽지 않거든.



내가 이직을 염두해 두고 가장 크게 생각했던 부분은 당연히 연봉이었다. 난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이니까. 물가는 오르는데 내 월급은 오히려 후퇴한다면, 머지않아 손가락만 빨고 배를 굶게 되는 것은 아닌가. 나인 투 식스로 갇힌 똑같은 직장인으로서의 삶인데, 이 정도로는 현재와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연봉 인상률의 기준은 객관적이지 않았다고 판단했고, 많이 오르지 않은 쪽이 받아들이기에 이건 '너는 그닥 우리에게 큰 존재가 아니'라는 제스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뭐 아니라면 내가 과민한 거고)



돈도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현재 이곳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현 직장은 여러모로 괜찮은 곳이다. 그렇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 않을까. 긴긴 코로나와 지지부진함 속에서 몹시 답답했다. 답답함의 근원이 무엇일까. 나의 나이는 이제 묻기보다는 대답해주는 쪽이며, 실수에 '아차'하고 어색하게 웃는 것만으로는 용납이 안 되는 축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축에 설 수 있는 사람일까. 지금까지는 이대로에 만족했지만, 더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에게 부끄러워요.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요.     




이게 본질적인 이직의 이유였다. 나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나는 움직임을 택하기로 했다. 기꺼이 책임을 감내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마냥 편한 것이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나에게 도전적인 상황을 맞닥뜨리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했다. 이직과 변화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책임지는 어른의 삶을 살기로 각오했다. (각오라는 낱말을 쓰다니... 나도 내가 생경하군)



내가  아는 나와 내가 모르는  사이를 치열하게 왔다갔다 하며 나는 이직을 시작하려 한다. 지금 현재의 나는 나아가는 쪽을 택했다. 좀더 대범해진 나를 만난  같다. (대범이라니.... 여러모로 기운차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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