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가산되는 나이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울적한 마음도 들었다. 나이듦은 유익한 점보다는 아쉽고 손해나는 점만 보이는 건 느낌 탓만은 아니기 때문에. 일일이 헤아리지 않아도 젊음은 청춘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찬란한 봄날이 그리지 않은가. 이런 말들이 내가 나이가 들었음을 또다시 증명하는 그런 모양새를 보이므로 얼른 거두어 들이기로 한다.
그래도 나의 어른스러운 면들이 점점 자란다는 느낌은 일견 뿌듯함이 되기도 한다. (어째 문장이 요상하다. 이미 한참 어른인데 어른스러운 면들이라든가, 자란다는 표현에서 새싹이 떠올라 꽤 젊은 친구가 자신의 성장을 이야기 하는 뉘앙스를 풍겨 머쓱하기도 하다. 조금 느릴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데 그와 반대로 옹졸한 면들이 불쑥 솟아오르는 건, 이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어떤 면에서는 여유로워지고 편해지다가도 또 어떤 면에서 불편한 감정이 드는 건 굉장히 이상하다. 그러니까 지킬 앤 하이드 마냥 치우친 감정이 양립하는 것 같달까. (물론, 지킬과 하이드만큼의 극단적인 선과 악은 아니겠지만)
일례로, 어떤 작가의 산문집을 읽다가 괜하게 쳇쳇 거린다. 항공사에 근무하던 초년 시절 머리 매무새를 다듬는 손재주가 없어, 첫 비행하러 가기 전 동료들이 이른 아침에 몰려와 머리와 화장을 해주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따듯한 이야기임에도 괜한 부러움으로 샘이 났다. 작가 주변인들이 그 작가에게 보내준 온정들이 모인 책이라 에피소드에는 그러한 내용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일 때문에 명문대 재학 중인 학생들이 참여한 행사를 운영했는데, 그 섭외가 타부서를 통해 이뤄진 것이어서인지 그 학생들 대접이 좀 극진해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공고를 내서 섭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행사료를 지급함에도) 꽤 친절함을 유지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생각보다 대본 숙지가 미진했고, 행사 후에 '빡셌다'는 표현을 쓰는 그들에게 나도 뒷맛이 좋진 않았다. 명문대생 답게 여러 차례의 촬영에서 빠른 이해력으로 대처해 나갔지만, 서로가 이해관계로 업무가 이뤄진 것이기에 그들은 오기 전 대본 숙지는 필요했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 긴 문장도 아니었는데 얼마나 보긴 했을까. 명문대생이라는 타이틀로 쉽게 가려는 걸까. 나역시도 하루 종일 서서 운영하다 보니 진이 빠졌고 그들보다 촬영하는 사람들도 지쳤을테지만, 촬영 후에 학생들은 마카롱을 선물로 받았다. 과연, 내가 과민한 걸까. 고까운 맘까지 들었다.
그러다가 박완서 작가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으면서, 이런 옹졸한 마음들, 쓸 데 없는 과민함을 부숴버리고 있다.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뭐가 어떻게 된 배배 꼬인 마음들을 풀어내 보기로 한다. 복잡한 세상에서 하나하나 따져서 무엇에 쓸 것이냐. 생각해 보면 까마득하게 어린 학생들인데, 무얼 따지고 있는 걸까. 갑자기 밀려오는 생각들에 맥이 빠지는 느낌이다. 무엇이 그리 꼿꼿하게 하는 걸까. 후,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마음이 넓어지진 않는구나. 우아하고 점잖게 나이 드는 일이라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