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천경자의 초상화를 한참 쳐다보다가
화백이 그린 언니*의 안부가 궁금해졌습니다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지
유방암 판정을 받고 수술은 잘 끝냈는지
아침의 부음으로 접한 유명배우의 죽음 앞에서
노년의 덧없음을 한탄하고는 있지 않은지
하여 다시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겨울밤
도심의 골목마다 청춘과 연인들은 무성하고
지난번 대화 이후로 안부가 끊긴 지인과
또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지인과
아예 말 한마디조차 나누지 못한 지인들을
먼발치 사진 한 장으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인연은 늘 겨울밤과도 같아
시린 손길이 닿지 못한 아쉬움 속에서도
사진에 담을만한 추억 몇 장이면 족해
이렇듯 긴 긴 겨울밤을 용케 버티곤 합니다
계절이 무심한 듯 달력만은 재촉하는 세밑
화살처럼 내달렸던 사연들의 흔적을 좇고
머리맡에 아로새긴 이름들의 유언을 좇다 보면
어느덧 또 새벽이 성큼성큼 다가와
이 밤도 머지않았음을 또 깨닫게 만드는
인연은 늘 그렇게 겨울밤만을 닮아
저리지도 않을 손끝을 저리게 만들고
우습지도 않을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차디찬 온정의 겨울밤
* 길례언니, 1973
# 단정,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