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을 때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뉴스만 쳐다보던 이여사는 밝게 웃었다
수익률 180퍼센트라는 기록적 수치가 갖는 만족스러움과
수억 원대의 자산을 지켜냈다는 보람과
다가올 아들 녀석의 제대에도 큰 충격이 없을 안온함 속에서
이여사는 그저 웃으며 여유롭고 편안할 수 있었다
출근을 하지 않는 일상은 그저 여유롭고 편안하기만 한 걸까
이여사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출근을 하지 않은 한 해를 돌아본다
수주잔고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을 때도
이여사는 밤샘근무를 했고 파워포인트로 예상치를 전망했으며
임원들끼리만의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아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영업이익 수천 원대의 자본증식에 톡톡이 기여를 했다면서
다가올 승진소식에 기대감으로 부풀었으며
이여사는 그저 묵묵하게 자기 일만 열심히 잘 수행하면 됐으며
그런 기대치가 앞으로도 쭈욱 이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렇지가 못했다
바다 건너편에서 들려온 괴기스러운 소문에 휩싸였었고
수천 명의 직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보따리를 싸 집으로 갔고
난데없이 등장한 새로운 경영진은 알 수 없는 대사들로 빼곡했고
회사는 한 번도 해보지 않던 일을 하겠다며 미친 듯 날뛰었었다
실적은 계속 곤두박질을 쳤어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었다
그래도 그들끼리만의 승진소식과 연봉상승과 사내복지는 영원했고
그래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그래서 다들 한꺼번에 망했다
망해도 망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는 게 포인트였다
이여사는 다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내일 IRP에서 얼마를 더 빼야
수지타산이 좋을지를 생각해 본다
# 단정,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