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희, '시 창작 스터디'
시 창작 스터디
토스트를 사먹다가 알던 선배와 마주쳤다. 다희야 내가 너 걱정돼서 하는 소린데 시 그렇게 쓰는 거 아니야. 나도 예전에 시 진짜 열심히 썼거든. 너도 알지? 나는 적당히 대답하면서 토스트를 먹는다. 오늘 점심은 차라리 굶을 것을. 굳이 먹겠다고 내려와서 선배랑 마주쳤다.
다희야 소문 들었어. 그 형이랑 왜 헤어졌어? 아니 욕하지는 말고...... 네가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래. 선배는 토스트를 먹는 입으로 자꾸 내 근황을 물어본다. 나는 선배가 그냥 토스트만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난 처음부터 네가 아깝다고 생각했어. 나는 앞으로 볼 일 없으니 그냥 참자고 생각했다.
다희야 오빠가 하는 말 다 시 이야기거든.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 그리고 넌 신춘문예는 내지 마. 너랑 안 어울려. 그런데 너 만나는 남자는 있니? 난 토스트를 입에 욱여넣었다. 빨리 먹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래도 네가 시인이 되면 좋겠다. 너 진짜 멋있겠다. 선배는 자기 토스트를 다 먹고 나를 쳐다본다. 나는 입에 토스트가 가득 들어 있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너 시인 되면 어디 가서 매일 자랑할게. 시집 나오면 많이 살게. 넌 끝까지 써야 돼. 선배는 씩 웃었다. 선배는 어색하게 내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 토스트 가게를 나갔다. 처음엔 무겁게, 나중엔 가볍게. 나는 토스트가 입에 가득 들어서 고개만 끄덕거렸다.
# 이다희, 같은 제목의 시집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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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라는 말 :
나희덕 시인, 이장욱 시인 등이 은사였던 한 지방대학 문창과 학생의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당선 소식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사제의 관계가 갖는 힘의 크기, 다년간 수련되어 온 내공의 믿음, 일정한 '도농격차'의 한계를 극복한 기개와 용기 등의 면에 있어 매우 후한 점수를 받을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문청들 사이에서, 또 문단 내부에서도 어쩌면 비일비재했을 '보이지 않는 성추문'을 가감 없이 전면에 드러낸 시가 표제작이었던 점도 꽤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때까지를 관통해 온 여러 명망 있는 시인들의 이름을 민망해하며 이제 더는 거론하지 않기로 한 계기가 된 일들도 제법 여럿 있었습니다만)
하필 '스승의 날'에 왜 가장 "스승"답지 못한 일들을 들추어내냐며 항변하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오히려 작금의 뉴스를 보면 더 이상 교권이 설 자리도 없고 그 어떤 자부심도 심지어는 불확실하기만 한 미래조차 그들을 옭아맸을 뿐이라는 어김없는 진실과 불편히 마주할 뿐입니다. (어제의 통계 뉴스 참조)
연예기획사들의 어두운 뉴스를 접해보면 대략 이런 풍인 경우가 많습니다... 데뷔를 시켜주겠다며 강제로 돈을 요구하는 일, 어떤 어떤 술모임에 강제로 합석해야 한다는 일, 못 이기는 척하며 무슨 무슨 희한한 만남을 응할 수밖에 없다는 일... 따위가 갖는 '부정적'인 인상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하등의 가치조차 없다면서 터부시를 해온 작태들이 실은 놀랍게도 아무 스스럼없이 행해진 '현실'이었다면, 과연 저 성토의 대상일 뿐인 연예계랑은 다르며 속칭 '고매하다'던 문단의 비루한 현실이 실로 어떻게 다른지 역시 소상하게 밝히는 게 좋겠습니다. 시인의 불편한 발언에 굳이 한 표를 던지는 의미가 그렇습니다.
"스승"이라는 말뜻은 나를 닮지 않은 제자를 길러내는 역할이요, 그건 내가 생전에 겪은 비겁할 일들을 앞으로 또 다시 겪게 하진 않도록 가르치기 위함인 법입니다. 그걸 행하는 이야말로 진정 "스승"이라는 칭호가 어울릴 것이며, 그저 나만의 '전망'을 좇거나 그걸 합리화한들 누가 "스승"이라는 호칭을 쉽사리 붙일까도 스스로부터 성찰할 대목이겠어서 하필 '스승의 날'에 그 "스승"의 의미를 한 번쯤 되새겨보는 일일 뿐입니다.
하필 수십 년을 사숙했던 이름들, 화엄사 각황전을 노래했고 화려히 두각을 나타낸 시단의 혜성 같던 이름들, 더는 거론하지 않는 어느 한 시대의 그늘과 "스승"의 참된 말뜻을 새삼 떠올리는 새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