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년이 온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목이 길고 옷이 얇은 소년이 무덤 사이 눈 덮인 길을 걷고 있다. 소년이 앞서 나아가는 대로 나는 따라 걷는다. 도심과 달리 이곳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얼어 있던 눈 더미가 하늘색 체육복 바지 밑단을 적시며 소년의 발목에 스민다. 그는 차가워하며 문득 고개를 돌린다. 나를 향해 눈으로 웃는다.
# 한강, '소년이 온다' 중에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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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45주년 아침 :
한강 작가가 "아물지 않는 기억"이라고 쓴,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이라고 쓴,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당했다"고도 쓴 광주의 기억에 대해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하면서도 결국 말을 잇지 못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한테는 노벨문학상을 안겨다 준 장면이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는 처음으로 '민주' 이상의 그 무엇을 요구하게 된 계기이자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가장 찬란했어야 좋을 그 역사적 순간이 당시에는 얼마나 끔찍하고도 잔인했으며 참혹한 현실이었을까를 떠올려야 하는 이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에, 브레히트의 말 그대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일 뿐입니다.
역사와 미래를 함께 기억하는 경건한 하루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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