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정시집

반성

by 단정



반성

주루룩 밤새 비가 내리고

한꺼풀 벗긴 생애는 또 다시 다음 꺼풀을 비집고 들어서는 햇빛을 기다린다

늘 익숙한 것처럼

매번 벗겨진 껍질은 조개를 닮아 반짝거리고 더러는 무지갯빛 색채로 환하기만 하고

단 한 번 생애가 이토록 휘황찬란한 적 없어서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그걸 한참 들여다보곤 한다

비로소 밤비가 그치면

침잠한 두 눈에도 이슬 같은 게 가끔 맺히곤 해

더러는 손등을 대고 훔치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냥 그대로 놔둘 적 많았다

눈이 그냥 녹듯이 계절의 물방울들은 늘 그렇게 사라지곤 하니까

사라지기 직전까지 빛을 발하던 물방울들이 이제

하나둘씩 하늘로 올라가는 광경을 지켜보기도 한다

철썩같은 믿음을 애써 다시 꺼내보기도 하였다

비로소 새벽이 밝아오면

간밤의 모진 말에도 가장 가까운 이들한테도

섣부른 칼날과 매정한 태도들을 바꾸어보고자 한다

쉽사리 바뀌지 않을 그것들을 바꾸고자 하려는 건

순전히 스쳐 지나간 바람 탓이 아니다

잠깐씩 불기만 했던 설렘 탓도 아니다

긴 긴 밤을 말없이 지킨 침묵이 답할 차례인 것이다

그걸 지켜내고자 인내한 시간들인 것이다




# 단정,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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