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운, '연가'
연가(戀歌)
Ⅰ
그대와 내가 마주보고
그대가 나의 누구인가를 묻고 있을때
그대는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네.
겨울의 눈덮인 들에 서건
별이 숨은 어두운 강에 서건
스스로 가득하며 따뜻했던 우리
우리가 거주할 정원의 나무
목련과 라일락 곁에서
정오가 던지는 은빛 그물 안에서
서로의 모습을 정립하려고 했을 때
우리는 흔들리기 시작했네
빛과 모습 시간을 뛰어넘는
사랑을, 장식하며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입맞춤속에 녹아있는
모든것은 무너지고 있었네.
Ⅱ
잠길에도
잠의 끝에 이르기 전에
우리가 걷는 길은 끊어져 있었어.
바람이 뜨락을 채우는 자정
뜨락을 지티는 소롯한 나무
혼자서 키가 크는 나무위에
그대가 기르는 새는
날아오지 않았어.
잠길에도
그대 사는 숲의 하늘을 알 길 없고
그림자만 긴 나무
낮과 밤니 엇바뀌는 끄트머리쯤
외가닥 바람으로 떠돌아도
그리움의 아슬한 끝은
잡히지 않았어
풀잎에 맺히는 한방울 이슬
이슬에 비치는
그대 사는 숲의 쟁쟁한 새소리
다가서면, 무수한 빛의 입자로
허공으로 허공으로 날아올랐어.
바람이 홀로 깨어있는 뜨락
어둠에 싸여
나무는 그림자가 길었어.
그대와 나의 가슴을 뚫고
어둠의 알맹이가 종처럼 울린다.
바람이 흐르며 싸이는 곳곳에
그대의 목소리가 흩어지고
앞뒤에서 문이 닫힌다.
그대가 밟고 간
어두운 들의 한쪽 끝
광주리의 햇살을 내려놓으며
건네주던 환한 아침을
가슴에 품어온 거울에 금이 간다.
그대의 얼굴이 흩어져 날고
내가 밟는 어둠
무겁고 예리한 어둠이 살을 부신다.
그대와 나의 분별의 창에 피는
살의 파편
저울눈 위, 눈금을 부수는 그대
야윈 눈빛을 남겨놓고
자신의 모습을 하나 하나 무너뜨린다.
어둠 속에
그대의 모습이 홀로 남아
어둠을 이고 일어나고 있다.
# 윤상운,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6월의 끄트머리에서 :
장마가 주중을 관통하고 있는 유월 마지막 주에 모처럼 <전후신춘문예 당선시집>을 펼칩니다.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이 시집도 온라인 서점에서 이제 찾아보기가 좀 힘들어졌죠. (대신에 새로운 신춘문예 당선시집들이 속속 등장하여 다행입니다.)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서 제목부터 '연가'라고 적혔길래 '윤상운'이라는 조금 생소한 이름을 찬찬히 바라보았습니다. 심사평 중 일부입니다. (박두진, 조병화)
"현금의 우리가 처해 있는 격렬하고 혼탁한 시적 환경을 극복하는 길은 두가지 측면에서 지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격렬-혼탁한 시대적 사회적 환경자체를 정면으로 대결하면서 그 내적 정신의 힘을 사상과 시정신으로, 즉 저항의 자세로서 하는 일과, 이러한 모든 시 외적 상황을 보다 더 침체된 올곧고 끈질긴 시의 순수성과 서정성으로 순화 극복하는 길이 그것이다. 당선작 '연가'는 후자의 경우 어떤 전형성을 지향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중략)
최근의 시들을 보면서 '서정'을 포기한 대신에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를 자문해 보는 시간입니다. 일체의 '저항'조차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