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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dante Jul 28. 2017

자기 앞의 죽음

'자기 앞의 생'을 읽고


죽음은 영원한 테마다.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던 때는 책 속의 모모보다 한두 살 정도 많은 나이였다. 그전까지는 주변에서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님의 상심을 바라보는 것은 힘들었지만, 의외로 외할머니의 상실 자체는 나에게 큰 충격이 아니었다. 지금 회상해보면 당시에 내가 아무렇지 않았던 이유는 외할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누가 와서 뺨을 한대 치고 달아난 거 같았다. 아프긴 한데 이 상황에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모모를 보면 처음으로 죽음을 현실로 맞이하던 나의 모습을 보는 거 같다. 그는 로자 할머니가 곧 겪게 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한 생명체가 사라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피부 속으로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모모는 죽음을 부정했다. 상실을 부정했기에 썩어 들어가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 그녀의 몸의 곳곳에 향수를 뿌리며 시체 옆에서 몇 주를 지냈다. 이렇게 첫 죽음이란 준비할 틈도 없이 찾아와서 무언가를 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처음 이렇게 죽음을 경험하고 동창의 죽음, 친한 친구의 죽음 등을 접하게 되면서 나이가 들었다. 죽음은 어느새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이제는 상실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외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된장국을 먹을 수 없는 것, 햇살같이 밝게 웃던 친구의 미소를 볼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즈음에 내게도 죽음이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몇 달 전 내게 종양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별거 아니라고 해서 방치했던 종양의 크기가 갑자기 커지면서 동네병원에 찾아갔는데 의사가 느낌이 좋지 않다면서 나에게 식욕은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더 이상 동네병원에서 치료할 수는 없고,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조직검사를 바로 진행했다. 그 결과를 기다리던 일주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언제나 남의 얘기였고, 남에게 일어나던 죽음이 내 얘기가 됐다.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들은 TV 속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내가 그 TV 속에 나오게 생겼다.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밤을 넘기고 내일로 가는 길은 힘들었다.


결과가 나왔다. 림프관종/혈관기형이라는 특수한 희귀병이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일상생활로 돌아가도 된다고 한다. 다만, 이 종양이 왜 갑자기 커졌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의문은 남아있지만, 육체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의사가 그렇다고 하니까 믿는 수밖에 없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던 일주일 동안 가장 많이 했던 생각 중에 하나가 "왜 나인가?"였는데, 이 책을 보면서는 "왜 로자 아줌마인가?" 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로자 아줌마는 정말 65년 동안 열심히 살아왔는데 갑자기 왜 그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살았는데 그녀가 회상하는 가장 행복한 때가 창녀였던 시절이라니.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는데 남은 건 95킬로가 넘는 몸뚱이와 모모뿐이라니.


진부한 얘기지만 참 세상은 불공평하다. 신이 우리 한 명 한 명을 봐줄 순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불공평함에 대한 분노는 떨치기 힘들다. 이 분노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이런 무기력함 속에서 외칠 수 있는 말은 인샬라(신의 뜻대로)뿐이다. 생의 흐름 앞에서는 모든 행위가 무력할 뿐이다. 

에밀 아자르 (aka 로맹 가리)

책의 내용만큼 보다 작가인 에밀 아자르의 삶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에밀 아자르의 본명은 로맹 가리로 같은 사람에게 두 번 상을 주지 않는 원칙을 갖고 있는 공쿠르 상을 두 번이나 탄 작가이다.  그가 두 번(1956년 하늘의 뿌리, 1975년 자기 앞의 생 )이나 받을 수 있었던 건 두 번째로 받은 작품에서 다른 필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얼굴 없는 작가로 활동했기에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가 다른 이름을 사용했던 것은 프랑스 문학계에서 그를 퇴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이름(에밀 아자르 외 4개)을 필명으로 써서 다시 작가로의 삶을 이어가고자 했는데, 그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첫 번째 작품인 '그로칼랭' 잘 되자 그 이후에는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계속 작품을 발표했었고, 마침내 '자기 앞의 생'으로 두 번째 공쿠르 상을 받게 되었다.


그는 로자 할머니처럼 죽음이 천천히 걸어오길 기다리지 않았다. 외려 그는 죽음이 있는 곳으로 스스로 뛰어들어갔다. 책의 중후반부를 읽으며 에밀 아자르의 죽음으로 가는 길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고 느꼈다. 죽음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건 죽어간다고 느낄 때 생기는 상상력인데, 이렇게 강렬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은 절대 순순히 죽을 수 없을 것이다. 확신했다. 순순히 죽기 전에 그의 상상력이 그를 전부 태워버릴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상상력의 불길에 재가 되기 전에 그는 권총 자살을 선택했다. 


그는 대중 앞에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사람이다. 자살을 하면서 유서에 해당하는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라는 글을 썼다. ( '자기 앞의 생' 한국판 맨 뒤에 붙어 있다.) 부조리한 프랑스 문학 비평계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자신이 에밀 아자르라는 인 점등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일이 전부인 진 세버그의 죽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밝히고,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라는 문장을 끝으로 글을 마친다. 


그는 죽어가는 순간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대중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매우 고민했던 거 같다. 요즘으로 치면 죽기 직전에 인스타에 사진을 찍어서 올렸는데 사진의 구도와 전달하는 메시지를 세심히 고민해서 올린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의 유서는 반대로 나에게는 보였다. 로맹 가리의 죽음은 그가 사랑했었던 진 세버그의 죽음과 연관이 있어 보였고, 여전히 그는 표현할 것이 더 남아있다고 외치는 거 같다.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는 것들을 미리 걱정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또다시 여기서 '자기 앞의 죽음'을 생각해본다. 나는 어떻게 죽어갈까. 또 어떻게 그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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